[말씀]

 

칼 야스퍼스라는 독일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1949년에 역사의 기원과 목표라는 책에서 차축시대(Axial Age, 車軸時代)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합니다. 이 시대는 주전 8세기부터 주전 3세기까지를 가리키는데, 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고대 그리스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했고, 중국에서는 공자와 노자 같은 사상가들이 나타납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불교 경전이 만들어지고, 이스라엘에서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이 출현한 시대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철학과 사상들은 대부분 이 차축시대에 한 번 이상은 나왔던 생각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시대에 형성된 사상들을 계승하고 있는 거죠.

 

우리 인간의 역사가 무구함에도 불구하고, 하필 이 차축시대에 새로운 사상들이 쏟아져 나온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문자의 기록과 관련이 있습니다. 문자가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지식인들 사이에 대중화된 시기가 바로 이 차축시대입니다. 그 이전에 아무리 좋은 사상과 철학이 있었다 할지라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상,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순 없는 거죠. 거기에 더하여, 문자의 기록 자체가 새로운 사상이 만들어지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이전의 모든 생각과 사상들은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기록된 이후부터 인간의 생각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머릿속으로 외울 수 있는 생각과 사상만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글로 적혀진 생각들을 읽고 또 읽으며, 혹은 쓰고 또 지우며, 각자의 생각들을 보다 깊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차축시대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가령 모세 율법이 주어진 때는 차축시대 이전입니다. 그 때는 돌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율법 안에 기록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차축시대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담긴 진의(眞意)를 깨닫고 이를 온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활동했던 구약의 사상가들이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가령 이사야 선지자는 모세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기 위해 성전에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삶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1:11-13)

 

예레미야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거죠.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1:33)

 

문자가 대중화되기 이전, 즉 차축시대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는 표현이 가능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축시대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형식적으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제가 매일 묵상자료를 올린 지 벌써 11개월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처음 묵상자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부활절을 기점으로 예배가 재오픈 될 것이라 생각되어서, 사순절 일일 묵상으로 하루하루 글을 썼었습니다. 그런데 예배의 재개가 계속 연기되더니, 어느덧 1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이 묵상자료를 하나 만드는데 짧게는 2시간, 길면 4-5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굉장히 부담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그 끝내야 할 타이밍을 계속 놓치다 보니, 벌써 1년 넘게 이 글이 지속되었던 겁니다. 다행히 이번 주일부터 대면예배가 재개되어 이제야 일일 묵상자료 올리는 것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당분간 열리지 못하는 수요예배를 대신하여) 매주 수요일마다 하나의 묵상자료를 올리려고 합니다. 또 내일부터 토요일마다 e주보가 나가는 관계로, 실질적으로는 오늘이 묵상자료 기간에 올리는 마지막 말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말씀을 우리 교우들과 이 글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다는 것은 무척 괴롭고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앞서 말씀 드린 차축시대에 대한 생각이 제일 많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머릿속으로만 묵상하는 것보다, 글로 쓰고 그 쓴 글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고 묵상하며 경험하는 은혜가 더욱 특별했습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흩어져 있던 말씀의 파편과 이야기의 조각들이 모여 하루하루 새로운 묵상의 글로 탄생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 동안 묵상자료를 매일 빠짐없이 읽으신 분들도 계실 테고, 어쩌다 한 번씩 읽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동안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멀리 계신 분들 중에는, 예배에 직접 참여할 순 없었지만 매일매일 전해지는 몬트레이 소식과 묵상자료로 인해 함께 소통하며 살 수 있었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도 있었고요, 오히려 예전에 예배를 드릴 때보다도 더 풍부한 말씀의 깊이를 깨달았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제가 생각해도 어렵고 난해한 글이 나왔지만, 불평 하나 없이 함께 묵상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덧붙여, 여러분들도 무언가를 적으며 누리는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굳이 여러분 스스로 창작한 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현재 김요한 권사님께서 여러 버전의 영어와 한글로 성경을 쓰고 계시고요, 문경숙 권사님께서 두 번의 성경쓰기를 마치셨습니다. 아주 쉽게 그냥 일기 형식으로 쓰셔도 괜찮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지만, 매일매일 뭔가를 쓰는 것은 내 복잡한 마음 속을 정리하고 내 진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놀라운 시간이 됩니다. 누구에게 보여 드리지 않아도 괜찮으니 꼭 한 번 여러분의 생각을 글로 써 보시고, 그 글 안에 담기게 될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보시기 원합니다.

 

 

 [권면 드리는 글 쓰는 방법]

 

1) 묵상하실 성경말씀 한 구절을 옮겨 적습니다.

2) 그 성경말씀과 관련된 개인적인 경험이나 이야기를 하나 적어 봅니다

3) 그 성경구절이 어떤 의미인지 여러분의 경험 혹은 그 이야기에 비추어 묵상하고 생각해 본 후에 그것을 적어봅니다.

4) 한 두 문장의 짧은 기도문을 적으며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봅니다.

 

*1)2)의 순서가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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