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4:22-27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말씀]

 

미국에 유학 와서 처음 공부를 했을 때, 제가 한국에서 배워온 수많은 지식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열정적인 번역에 의한 것이었음을 깨닫곤 했습니다. 누군가가 그 복잡한 유럽 언어들을 한글로 잘 옮겨줘서 제가 그 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던 거죠. 이러한 생각은 원어 성경을 읽으면 더욱 더 실감이 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물론 잘못 번역된 단어들도 나오지만, 반대로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번역된 단어들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단어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정말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그 노고가 보이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곧 떠날 것임을 암시하는 말을 하십니다. 제자들 입장에선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희랍어로 파라클레토스(paraklētos)라는 존재가 제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paraklētos)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14:16-17)

 

여기서 보혜사(保惠師)라고 번역된 단어가 바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단어는 중보자 혹은 위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로는 대개 상담자(Counselor)로 번역되었죠. 그런데 사실 오늘날 이 단어의 진의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파라클레토스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주장하는 논문만 해도 수 백 권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예수님이 이 단어를 무슨 의미로 사용하셨는지는 미스테리입니다. 아마도 법정용어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 알려져 있습니다. 재판에 설 때 피고 혹은 원고가 경황이 없어서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밝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그 사람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곁에서 대신 그의 입장을 밝혀주곤 하는데, 그 사람을 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이 단어는 법정 대리인인 변호사에 가깝습니다.

 

이 파라클레토스는 우리 말로 옮겨질 때는 지킬 (), 은혜 (), 스승 ()를 연결하여 보혜사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생명을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스승님 같은 존재라는 거죠. 물론 기존에 보혜사라는 말이 우리말로 사용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단어가 참 잘 번역된 단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파라클레토스를 언급한 시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곧 떠나실 것을 공표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어디론가 떠나신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은 모두 불안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 중에 도마와 빌립, 유다가 예수님께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십시오, 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세상에 밝히 알리시지 않습니까? 등등의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떠나더라도 또 다른 보혜사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는 이 보혜사가 성령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라는 표현을 쓰셨죠. 그렇다면 성령 전에 이미 제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첫 번째 보혜사가 따로 있음을 알 수 있죠.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그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며 보혜사의 역할을 해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동안 그들을 지켜 주셨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심으로 친히 그들의 스승()이 되어 주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예수님이 보혜사인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을 하신 이유는, 그들을 위해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생전에 제자들의 보혜사로서 그들과 함께 하셨듯이, 예수님이 떠나시더라도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고 그들의 보혜사 역할을 해주신다는 겁니다.

 

쉬운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혜사이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일어날 그 결과들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7)

 

결국 보혜사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 평안을 주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돌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가르치심으로 평안을 주셨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성령께서 그러한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든든함과 평안 속에서 지냈듯이, 우리들도 성령으로 인하여 그러한 평안을 맛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성령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보혜사입니다. 이 평안은 물질적으로 넉넉해서 얻게 되는 든든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오늘도 보혜사 성령이 여러분들과 함께하심으로 여러분들이 참 평안을 누리실 줄로 믿습니다.

 

 

 [묵상]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으며 가장 든든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

 

내 삶 속에서 보혜사 성령을 통한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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