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9:33-37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말씀]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행은 갈릴리 호수 서북쪽에 있는 가버나움에 도착해 어느 집에 머물러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오는 길에 서로 토론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어 보셨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토론이라고 순하게 표현하셨지만, 사실은 제자들끼리 누가 더 잘났냐 하고 말싸움을 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아시겠지만, 제자들은 틈만 나면 자기들끼리 서열 다툼을 벌였습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이 곁에 버젓이 계시는데도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하려고 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절반은 갈릴리 어부들이었지만 다른 절반은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엔 세리와 반정부운동을 하던 사람들까지 섞여 있었죠. 하지만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경력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겁니다 (10:28).

 

저는 이 제자들의 상황이 우리 이민자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믿습니다. 처음 미국에 와서 한인들을 만나게 되면 동질감과 함께 이질감이 생깁니다. 동질감이라는 것은 같은 나라에서 와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질감이라는 것은 과거 한국에 살 때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 한인들끼리 모여서 굳이 서열을 정하려 하면 무엇으로 서열이 정해지죠?

 

여러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일단 한인사회에선 당연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현재 돈을 잘 버는 사람, 과거에 화려한 경력을 가졌던 사람 등이 높은 서열로 올라가죠. 그런데 이민생활이 점점 길어질수록, 과거의 경력은 조금씩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아무리 한국에서 엄청난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이곳에 오면 그 모든 경력이 다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민사회는 한국사회에 비해, 그 사람의 과거보다는 현재를 더 집중해서 봐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에 돈 많았다는 말보다는 지금 돈을 잘 버는지가 더 중요하고, 과거에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며 살았다는 말보다는 현재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서의 삶보다는 과거 한국에서 더 잘 나갔을 때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 라고 말하며 공허한 과거타령을 합니다. 예전에 잘 나갔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서 잘 못 나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도 과거 제자가 되기 전의 경력과 현재의 상황 간에 큰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제자는 자신이 연장자임을 강조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회는 우리와 같은 장유유서 사회가 아니었었죠. 어떤 제자는 과거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력도 지금 예수님 밑에서 동등한 관계일 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남들보다 먼저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했을 테고, 자신이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과 더 가까운 관계라고 우긴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서열 다툼을 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려주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9:35)

 

가장 높은 서열을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오히려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저는 이 말씀이 우리 한인사회, 특히 우리 한인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저는 한인교회가 한인들 간의 서열을 다투는 자리로 전락한 경우를 너무 많이 목격했습니다. 가장 많이 경쟁하는 것이 돈입니다. 누가 더 좋은 차를 타고 교회에 오느냐, 누가 더 좋은 집에 사느냐가 한인들에겐 큰 관심거리입니다. 또 자녀를 어느 대학에 보내고, 어느 직장에 보내느냐가 서로 간에 자존심 문제로 바뀔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신의 서열과 가치를 나타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한 사람의 한인으로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 주 동안 미국 사람들을 상대로 남의 나라 말로 일하다 보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어디 가서 내 자랑을 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에 교회 와서 말 통하는 한인들을 붙들고 서로 자기 자랑을 하는데 여념이 없는 거죠.

 

그럼에도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장 우선이 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자신을 가장 낮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교회에서 교우 간에 다툼이 벌어졌을 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져 주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교회는 천국을 미리 맛보는 (pre-tasting) 공간이기 때문이죠. 천국에선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18:4). 세상의 기준으로 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가장 큰 사람이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기도]

 

내 삶 속에서 내가 이룬 것들을 자랑하기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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