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6:1-4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16: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말씀]

 

한 목사님이 신장병에 걸려서 신장이식을 받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장을 이식해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고통받는 종을 위해 신장을 이식해줄 분은 손을 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몇 명이 손을 들자 이내 그곳에 앉아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다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감격해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신장은 한 사람의 것이면 되는데 이렇게 모두들 손을 든 상황에서 단 한 명만 지목하는 것은 은혜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오리털 하나를 꺼내 입으로 불 테니 그 오리털이 내려 앉는 분께서 신장을 이식해 주시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정해 주실 테니 모두들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기다리기 원합니다.

 

그리고는 오리털 하나를 꺼내 회중석으로 후~ 하고 불었습니다. 이내 오리털은 회중석 위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사람들이 앉은 곳으로 내려가려 하는데, 그 때마다 주여~ 하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오리털이 날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는 듯 하다가도, 또 다시 주여~ 소리가 나면서 오리털은 내려 앉지 않고 또 한 번 천장으로 날아갔습니다. 결국 그 날 오리털은 내려앉지 못하고 계속 교회천장을 날아 다녔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우스개 소리로 만든 이야기겠지만 이 이야기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우리에게 입으로만 신앙생활하지 말라는 거죠. 수 백 명이 손을 들 땐, 이 중에 나는 안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손을 들었을 겁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선 손을 들지 않는게 더 민망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리털이 자신에게 날아올 때마다 주여~ 소리를 내며 오리털을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만든 그 행동에 그들의 본심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진짜 본심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 안에 있죠.

 

예수님 시대는 로마제국 아래서 식민지로 고통받던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같은 때였죠. 그래서 이 당시 유대인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했습니다. 특히 그들에게는 메시아라고 하는 구세주가 곧 이 땅에 나타날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Messianism)이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에 대한 신상도 나름 구체적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며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만큼 사기꾼들이 좋아하는 수단이 없었죠.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며 유대인들을 현혹했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5장에 보면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은 그리스도교가 나타났을 때 그 이전에 나타났던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을 지적합니다 (6:35-37).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메시아임을 자칭했고 유대 백성들을 현혹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겠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라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이전의 사기꾼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끼리 그가 메시아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이 예언된 그 메시아인지 아닌지 헛갈렸던 거죠.

 

예수님께 직접 물어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옥에 갇힌 세례요한조차도 제자들을 시켜 예수님이 진짜 그 메시아가 맞는지 물어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직접 찾아보세요 7:22-23)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6장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표적을 달라고 하죠. 무슨 표적일까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으니, 예수님에게 이전의 사기꾼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메시아인 증거를 내놓으라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16:2-4)

 

예수님은 절대로 스스로 메시아라고 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 자신이 역사한 일들을 보고 스스로 분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도 그렇죠. 3일 동안 컴컴한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스스로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한 것이지, 당장 그들에게 뭔가 확증할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표적은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그 삶과 죽음을 통해 증거했지 말로 내가 메시아다 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서도 예수님은 말보다는 그 행동과 열매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6:35)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단까지 아니어도 말만 앞선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죠.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을 분별하는 기준은 사실 누군가의 번지르르한 말이 아닙니다. 그 행동이죠.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나의 말보다는 나의 행동이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여러분은 말과 행동 중에 어느 것이 더 앞서 있습니까?

 

 

[기도]

 

내 삶 속의 행동으로 이룬 열매를 통하여 내가 참 그리스도인인임을 모두에게 증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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