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디모데전서 4:7-11 (새번역)


4:7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을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4:8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4:9 이 말은 참말이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말입니다. 

4:10 우리가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사람의 구주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므로, 우리는 수고하며 애를 쓰고 있습니다.

4:11 그대는 이것들을 명령하고 가르치십시오.  



[말씀]


1961년에 예일대학교의 심리학과 조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심리학 역사에 길이 남을 실험을 시행합니다. 그것은 ‘복종’에 관한 실험이었습니다. 이 실험을 위해 한 가지 특별한 실험실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전기고문을 하는 방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실험자를 미리 배치합니다. 한 명은 ‘명령하는 사람’이고, 또 한 명은 ‘고문 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이들은 명령에 따라 ‘고문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거죠. 다만 ‘고문을 하는 사람’은 ‘고문을 당하는 사람’을 볼 수 없고, 오직 괴로워하는 소리를 귀로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배치가 된 거죠. 


 1.jpg


이 실험은 사실 ‘고문하는 사람’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고문 당하는 사람’은 실제로 전기고문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하는 사람이 누른 스위치의 강도를 보고 그때그때 괴로워하는 듯한 소리를 내는 ‘연기자’입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고문하는 사람’의 역할을 맡아 명령에 따라 전기 스위치를 높이게 됩니다. 가장 약한 것은 15볼트이고, 가장 강한 것은 450볼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명령에 따라 15볼트부터 조금씩 전압을 올려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다 가짜로, 실제 ‘고문 당하는 사람’은 전기에 감전되지 않고 연기만 하게 됩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명령하는 사람의 불합리한 명령을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얼마나 ‘복종’하는지를 보는 실험입니다. 몇 십 볼트에만 감전돼도 괴롭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이 실험이 시작될 때만 해도 실험을 주체했던 스탠리 밀리그램은 450볼트까지 전기를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괴로워하는 연기자의 소리를 진짜라고 믿었고 전압을 더 올리라는 명령을 들을 때마다 계속 주저했습니다. 그 때마다 명령을 하는 사람은 이렇게 준비된 대사를 말했습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실험을 위해서는 계속 하셔야 합니다!”

“제가 책임질 테니 당신은 계속 실험을 진행해 주셔야만 합니다!”

“당신에겐 계속 진행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실험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참가자들 중 90%가 꽤 높은 수준까지 전기를 올렸고, 그 중 65%나 되는 사람들은 가장 높은 전압인 450볼트까지 전기를 올리며 스스로 고문을 강행했던 겁니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 인간이 보여주는 ‘불합리한 복종 현상’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그 명령의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것은 ‘상황’ 때문입니다. 이 실험의 경우 ‘명령자’와 단둘이 있는 ‘상황’이 그 실험 참가자를 잔인한 명령을 수행하게 만든 거죠. 실제로 우리 인간은 새로운 상황에 처하면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함을 따지기보다는) 그 상황에 맞춰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군대’나 ‘직장’, 어떤 여성들에겐 ‘시댁’ 같은 곳이 그런 불합리한 상황들이 돌출되는 장소일 텐데요, 그럴 땐 저항하기보다는 그 상황의 흐름에 그냥 몸을 맡기며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 실험은 또한 우리 인간의 잔인한 습성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령 2차대전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은, 독일군이나 일본군이 저질렀던 끔찍한 만행들을 지적하며, “어떻게 그렇게 인간이 타인에게 잔인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끝난 후에 그들이 하나하나 만났던 독일군이나 일본군들은, 자신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실험은 이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던 사람들은, 그들이 처했던 잘못된 상황들로 인해 불합리한 명령마저 그대로 순종했던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인간의 ‘도덕적 책임감’은 눈 앞에 있는 ‘사회적 권위’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는 겁니다. 


물론 지금도 불합리한 상황들 속에서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북한에도 많을 테고요, 테러단체에 속해 있거나,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런 단체들이 가르치는 것을 보면 불합리하고 말도 안돼 보여서 “이걸 누가 믿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강령에 순종하며 자신들의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매몰되어 잘못된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들은 제대로 살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군대’나 ‘직장’, ‘시댁’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 또한 우리가 처한 상황에 쉽게 굴복하고 그 상황 속에 매몰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몸이 속한 상황 자체를 외면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할 순 있습니다. 잘못된 상황에 처하여 불합리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내 상황을 사전에 미리 잘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내 평소의 삶을 늘 다스리고 경건하게 만들어서, 불합리한 상황들이 내 마음을 굴복시키지 않도록 늘 내 삶을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경건의 삶을 살도록 주변상황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을 물리치십시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십시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 (딤전 4:7-8)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런 윤리적인 강령을 들을 때마다 “그냥 좋은 말이거니...” 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강령들 하나하나가 참 귀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들을 정말로 실천하며 살 때, 내가 불합리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가령 앞장에 이런 말씀도 있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난폭하지 아니하고 너그러우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딤전 3:3-4)


어려운 말씀은 아니지만 실제로 지키기 쉬운 말씀도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되는 이상, 술을 안 마시고, 남과 다투지 않으며, 돈을 외면하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당연히 이걸 다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제대로 지키며 살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충만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믿고 있는 내 자신의 신념을 올바로 지키며 살아갈 때에야 느낄 수 있는 영적인 자유로움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에 굴복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내 자신을 책임지며 사는 권위있는 삶으로 내 삶이 변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의 주인은 이 세상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아니, 여러분의 주인은 오직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신 우리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주신 삶을 이 세상에 맡기고 하루하루 대충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도 충만하게 살아가시는 은혜로운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그저 그런 하루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스스로 주관하고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입니까?



[기도]

 

내 삶이 주어진 상황에 굴복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대로 내가 그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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