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사기 10:10-16 (새번역)

 

10:10 그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부르짖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을 섬기어,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10:11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사람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0:12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도 너희가 나에게 부르짖었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 주었다.

10:13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여 주지 않을 것이니,

10:14 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나 가서 부르짖어라. 너희가 괴로울 때에 그들에게 가서 구원하여 달라고 해라."

10:15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다 하십시오. 그러나 오늘만은 우리를 구출하여 주십시오."

10:16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주님을 섬기니,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으셨다.

 

 

[말씀]

 

사사기를 읽다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 처음 왕이 세워질 때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는 혼란 그 자체입니다. 사사기는 그 혼란의 원인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사기에는 이런 구절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4)

 

국가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그들을 인도할 강력한 지도자도 없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따르며 살았습니다. 질서도 없었고 규칙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따르며 살았을까요? 바로 자신의 욕망입니다. 우리 인간은 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죄인이라 규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실제로 죄를 많이 행한 탓도 있지만, 우리의 삶의 방향이 늘 죄와 악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법이나 질서 같은 족쇄가 없어질 때마다, 우리 인간은 늘 스스로의 이기심과 욕망이 시키는 대로만 살곤 하죠. 실제로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법과 질서가 눈 앞에 적용되지 않으면, 인간은 존엄을 잃어버린 채 이기적인 욕망만을 추구하는 가장 추악한 존재로 변해버리곤 합니다.

 

또한 인간의 욕망이 가진 가자 큰 문제는 그 한계가 없다는 겁니다. 돈이 대표적이죠. 처음엔 먹고 살만한 돈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었었는데, 이상하게 돈은 벌면 벌수록 계속 모자릅니다. 결국 다른 사람을 속여서라도 더 많은 돈을 움켜쥐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내가 가진 욕망을 다 채우며 살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안 짓는 것도 아니죠. 이번에는 그 욕망을 채우려는 또 다른 욕심으로 다시 헛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합니다. 무엇을 하며 허비할까요? 바로 우상숭배를 하며 허비합니다.

 

여러분들은 우상숭배가 미신이 지배하는 옛날에만 성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는 미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성행했던 것이 아니라,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이기에 번성했던 겁니다. 옛날 사람들이 단지 돌이나 나무로 신이라고 만들어 놓고, 그 신성한 힘이 무서워서 절했던 것이 아니죠? 그들이 돌이나 나무에 절했던 이유는 그들이 품었던 욕망을 자기들 손에 쥘 수 있기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과학의 시대입니다. 당연히 돌이나 나무를 만들고 이것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상숭배가 사라졌나요? 그렇지 않죠. 우상숭배는 미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현대인들에게는 사주와 점이 유행하고 있고, 신문을 펴면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재미로 보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점과 운세의 결과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이미 재미의 수준을 넘어선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런 미신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큰 우상숭배는, 우리가 돈과 물질을 그 어떤 것보다 더 사랑하고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보다, 내 주머니 속에 내가 당장 필요한 돈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어야, 내 삶이 덜 불안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사실 그 잉여의 돈이 당장 필요치 않은데도, 그걸 쥐고 있는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삶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야말로 돈과 물질을 섬기는 우상숭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욕망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따라오는 우리의 허물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우리 인간은 죽을 때까지 우상숭배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욕망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욕망을 이기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10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를 하였고, 하나님은 암몬과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게 만드십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이 암몬과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죠. 하지만 이 때 하나님의 응답은 강경하고 신랄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10:13-14)

 

이 때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10:15)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을 다 부숴버립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질서나 율법을 따르기보다는, 언제나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소견대로가 아니라,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해달라고 간구하죠. 그리고 결국, 이들의 회개하는 고백과 참회하는 행동을 보시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또 다시 구원하시게 됩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서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우상숭배는 내 욕망을 표현하는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우상숭배가 내 욕망을 모두 다 충족시켜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상숭배만 쫓던 사람들이 결국 잔뜩 죄만 짓고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내 욕망을 나타내도록 도와주긴 하지만, 욕망 자체를 만족시켜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다르죠. 우리가 하나님을 구주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섬기던 우상을 다 제하고 하나님을 다시 쫓기로 결단하고 다짐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주님을 섬기니, 주님께서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을 보고만 계실 수 없으셨다. (10:16)

 

오늘날의 우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우리의 삶이 추구해 나아가야 할 것은 내 욕망을 채우는 일이 아니죠. 그 욕망을 넘어서서 우리를 사랑 가운데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욕심과 이기심 대신,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주님을 더욱 붙들기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습니까?

 

 

[기도]

 

내 이기적인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의 사랑을 내 삶 속에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늘 함께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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