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0일 –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걷기
2020.10.19 23:01
[본문]
사도행전 20:12-16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20: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20: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20: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말씀]
드로아는 터키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아마 드로아라고 하니까 낯선 이름으로 들릴 텐데요, 사실은 여러분도 다 아는 도시입니다. 바로 예전에 트로이 전쟁이 있었던 ‘트로이’를 성경에서는 ‘드로아’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이곳에서 유두고라고 하는 한 청년이 바울의 말씀을 듣다 3층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를 당했지만, 바울로 인해 그의 생명은 다시 살아납니다. 드로아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12절). 그리고 나서 바울의 선교팀은 드로아를 떠나 앗소로 이동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기이한 에피소드 하나가 지나갑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은 16장부터 인칭이 변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도행전은 3인칭 시점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나 바울의 이야기를 전할 때, ‘베드로가...’ 혹은 ‘바울이...’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6장부터 갑자기 ‘우리’라는 1인칭 시점으로 변합니다. 물론 ‘우리’라고 하는 관찰의 주체는 바울의 모험을 따라갑니다. 시점만 변했을 뿐 주인공 바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오늘 본문인 20장을 보면, 그 ‘우리’라는 사람들과 바울이 잠깐 나눠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당연히 ‘우리’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바울의 일행들입니다. 이 선교팀에 바울과 실라, 그리고 아마도 디모데와 ‘누가’가 포함되어 있었을 테니, 이들이 ‘우리’라는 사람들이었겠죠. 그런데 드로아에서 유두고라는 청년이 죽었다 살아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난 다음 날, ‘우리’가 드로아를 출발해 앗소로 배를 타고 가게 되는데, 바울만 ‘우리’랑 분리되어 내륙으로 그 길을 혼자 걸어 가게 됩니다.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그 동안 동료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배를 타면 편하게 앗소까지 갈 수 있는데, 굳이 이 길을 도보로, 그것도 혼자서 걸어가기로 결정한 겁니다.
사도행전에서 너무 짧게 지나간 이야기여서 아마 이 부분을 여러 번 읽으신 분들도 눈치를 못 채고 지나간 분이 많을 겁니다. 왜 바울은 일행과 떨어져 이 길을 굳이 걸어가기로 결정했던 걸까요?
지금도 터키 트로이에 가면, 바울이 혼자 걸어갔던 이 길을 기념해서 드로아(트로이)에서 앗소(앗소스)까지 걸어가는 4일 여행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 걷지 못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넉넉하게 설정된 스케줄입니다.
실제로 이 거리는 40킬로미터 정도 되기 때문에 차로 이동하면 1-2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걷는 것은 다른 얘기죠. 험한 산길도 있고, 당시엔 치안이 좋지 않을 때라 강도를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바울이 이 길을 걸었던 때는, 마지막 3차 선교여행 때였기 때문에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래서 앗소까지 얼마나 걸렸을 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을 들여서 걷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 뒷부분 얘기를 보면, 바울이 오순절 전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하고자 서두르는 모습이 나오거든요 (16절). 그래서 하루나 이틀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바울은 굳이 이 길을 홀로 걸어갑니다. 바울은 이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물론 성경에 그 이유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었는지 각자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도 혼자 길을 걸을 때가 있을 겁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기 때문에 일부러 걷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걸을 일이 많지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혼자 걸을 때가 있죠. 여러분들은 그럴 때 혼자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마도 바울이 일행과 떨어져 혼자 걸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은, 여러분들이 혼자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실제로 우리들도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죠. 이상하게도, 자다가 잠이 안 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땐, 더 잡념도 많아지고 그 결론도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걸으면서 생각을 하면 훨씬 더 머릿속이, 정리도 잘 되고 그 결론도 긍정적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어쩌면 바울도 자신의 마지막 선교여행을 마무리 짓는 이 시점에서, 혼자 걸으면서 이것저것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걷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진 않지만, 오늘은 일부러 시간 내서 한 번 걸어보려고 합니다. 걸으면서 하는 기도와 묵상이, 쳇바퀴처럼 도는 제 삶을 좀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여러분들께도 권하고 싶습니다. 잠깐이라도 일부러 한 번 걸으시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눈과 마음에 무엇을 보게 하시고 무슨 생각을 품게 하시는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마스크 쓰고) 문 밖을 나가 보시기 권면합니다.
[묵상]
오늘 혼자 걸어 보셨습니까? 혼자 길을 걸으실 때 여러분은 무엇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