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14:7-11

 

14: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14: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14: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4: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

 

구한말에 우리 조선을 찾아왔던 선교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선교사들도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처럼, 1800년대 말에 온 선교사가 있고, 1900년대 초에 조금 늦게 우리나라를 찾아온 선교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온 선교사들은 먼저 온 선교사들에게 조선의 문화와 풍습을 배웠습니다. 고참 선교사들은 새로 오는 선교사에게 항상 당부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리에 관한 거죠. 조선인들의 방에 들어가면 그 앉는 곳에는 상석과 말석이 있으니, 선교사는 상석을 피해서 항상 말석에 앉으라는 충고였습니다. 그럼 이제 새로 온 선교사들은 어디가 상석이고 어디가 말석이냐고 묻습니다. 그럼 고참 선교사들은 바닥을 만져서 따뜻한 곳이 상석이고, 차가운 곳이 말석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럼 아궁이를 떼지 않는 여름에는 어떻게 상석과 말석을 아느냐고 물어보죠. 고참 선교사들이 뭐라고 대답 했을까요?

 

방에 들어가면 이 걸려 있는 곳을 찾으세요. 거기가 상석입니다.

 

참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상석은 이 있는 자리니까요. 집 안에 갓을 모시며 사는 조선인들에게 선교사들도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이 선교사들이 지적한 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석을 따지고 서열 가늠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식사하는 자리만 가도 왠지 모를 서열이 존재하고, 그 서열에 따라 상석과 말석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리를 잘못 앉으면 괜히 눈치 없는 사람이 돼 버립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서열을 따집니다. 이민생활 하면서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고향을 확인하고 학교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나이도 따져보고 필요하면 가문의 항렬까지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나와 상대방이 서로 어떤 위치에 있음을 가늠하려고 하죠. 이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서열문화 때문입니다. 이 서열문화가 좋다 나쁘다 함부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이미 우리의 문화로 자리 잡혀 있으니까요.,

아마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서열문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이 상석과 말석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4:8-9)

 

그래서 차라리 말석에 앉으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4:10) 

 

이 이야기는 사실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명심보감 읽듯이, 삶의 처세술 같은 가벼운 주제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나타내는 더 깊은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상석에 앉든, 혹은 말석에 앉든, 그 사람이 앉을 자리는 결국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정말 상석에 앉을 만한 사람이면 말석에 앉아도 결국 상석에 앉게 되고, 애초에 상석에 앉지 못할 사람 같으면 그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의 주제는 단순히 겸손한 척 해야 체면을 차릴 수 있다는 처세술만을 말씀하는게 아닙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Dirty is out of the place

 

더러움이라는 것은 그 장소를 벗어나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를 벗어나면 내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고 오히려 추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가령 금붕어는 어항 속에 있어야 예뻐 보입니다. 새도 하늘을 날 때가 가장 멋있죠. 그런데 금붕어나 새가, 내가 자는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절대 예뻐 보일 수 없습니다. 내 잠자리에 비린내가 배거나 여기저기 지저분한 깃털이 흩어져 있을 테니까요. 이것은 물고기나 새가 그 본질이 변해서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변한 게 아니죠. 본질은 그대로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아름다움을 잃고 추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교회에서 맡겨진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내 달란트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문제일 순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더 큰 문제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아예 사용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달란트 비유, 25:14-30). 자신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러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여러분에게 맞는 자리에서 열심히 그 직분을 감당할 때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각자의 달란트에 맞는 사명과 직분을 열심히 수행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우리 가나안 교회를 통해서 아름답고 행복한 교회생활을 누리시기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은 어떤 달란트를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그 달란트에 맞는 직분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나요?

 

 

[기도]

 

내 몸이 편한 직분이 아니라, 내 영혼이 진정 아름다워질 수 있는 사명을 나에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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