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9일 - 수요예배를 대신하는 묵상 말씀 "사도의 부족함, 그리고 극복"
2021.05.18 00:39
[본문]
사도행전 6:1-6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말씀]
한국에서 신앙생활 하셨던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예전에 어떤 교회들은 저녁 해가 떨어질 때까지 주일학교 아이들이 교회에 남아 놀곤 했습니다. 그 당시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린아이 하나가 주일학교가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 혼자 남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해가 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혼자 남아 있는 아이를 보고 담임목사님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왜 집에 가지 않고 남아 있니?”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내일 학교숙제가 있는데 집에 가면 바로 잘 것 같아서 여기서 풀고 가려고요.”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이 그 아이를 기특하게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열심히 숙제 하도록 해라. 혹시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니?”
그러자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사실은 산수 문제 하나가 너무 어려워서 아직 못 풀고 있었어요. 목사님께서 한 번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목사님은 그 문제를 받아 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문제라고는 해도 목사님이 학교 다닐 때랑 다른 용어로 문제가 나왔고, 언뜻 봐도 헛갈렸기 때문에 목사님은 한 번에 풀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면서 이런 문제 하나 못 푸시나요?”
물론 목사님 입장에선 큰 망신이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목사님이라고 해서, 또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한 번에 다 풀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실제로 우리는 목사님들이 이런저런 실수를 저질러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자주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교인들이 목사님들에 대해 착각하곤 하죠. 교회에서 예배를 경건하게 인도하고 말씀을 근엄하게 선포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존경심이 우러나온 탓인지, 목사님들은 실수 하나 안 할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까지는 괜찮지만, 어쩌다 목사님이 실수라도 한 번 하면 크게 실망하며 “이런 분이 정말 하나님의 종이 맞을까?” 하고 고민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서 그 삶의 모든 것들이 다 완벽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이 목사님들에게 주신 것은 교회를 이끌어가고 말씀을 선포하는 능력이지, 인간으로서 완벽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부족한 점들 때문에 목사님들은 스스로 더욱 더 철저한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안하며 살 순 없겠지만, 노력과 반성을 통해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6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사도들이 그만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원망을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행 6:1)
아마 당시 교인들은 사도들이 예수님을 직접 모셨던 제자들이고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했던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교회를 다스림에 있어 실수 하나 없이 잘 치리(治理)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다스림 속에서도 불공평하고 원망스러운 일이 일어나자, 교인들은 사도들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최초의 교회에서 벌어졌던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한 셈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향후 교회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열두 사도들은 자신들의 문제점을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들은 다른 지도자들을 불러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행 6:2)
열 두 사도들은 자신들이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그 해법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사도들은 말씀에 관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구제하는 일을 사도들보다 더 잘 하는 사람들을 따로 세워서 그 일을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이들이 바로 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집사들이었습니다. 최초의 교회는 이와 같이 열 두 사도의 힘만으로 운영됐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족함을 온전히 채워주는 또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세워졌던 겁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여러분이 다녔던 교회 안에서, 혹은 이웃 교회로부터 들려오는 목사님들의 안 좋은 풍문 때문에, 주의 종들에게 몇 번이고 실망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예, 저도 실망 많이 해 봤습니다. 제 스스로 목회자가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너그럽게 봐줄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저도 다른 목사님들의 흠결에 대해 매섭게 눈을 치켜 뜨는 편이었고, 사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말씀 드렸듯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완벽할 순 없습니다. 제 자신도 그렇지만, 평신도들보다 훨씬 더 실수도 많이 하고 부족한 사람이 목회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히려 목회자들이 그런 부족한 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목회자가 완벽해서 교회의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하면 그 안에서는 새로운 리더들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목회자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은사를 나누며, 그 목회자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역을 함께 이뤄내는 곳이죠.
이것은 목회자 뿐만 아니라, 다른 평신도들의 부족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너무나 부족하기에 하나님은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직분을 맡을 때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일은 ‘완벽’을 목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더 은혜로운 공동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나 제가 초등학생의 숙제를 풀지 못하면 또 어떻습니까? 다만 여러분들이 맡은 자리에서 여러분 은사에 적합한 아름다운 직분들을 함께 다른 이들과 채워나가며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더불어 이뤄나가는 우리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묵상]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스스로 어떤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의 그 부족한 재능을 채우며 함께 돕는 사람들이 여러분 곁에 있습니까?
[기도]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보다는 나로 인해 그 부족함이 채워지게 하시고, 내 부족함 또한 채울 수 있는 누군가를 주님께서 내 곁에 늘 세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