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주일예배가 다시 열립니다]

 

알고 계신가요?

1. 예배가 다시 재개되어도 아침식사 친교를 같이 못합니다. 그래서 당분간 예배시간이 오전 8시 반으로 늦춰집니다.

2. 자동차에서 내리시기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다른 성도와 6피트의 거리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3. 주보를 통한 감염이 우려되기에 당분간 주보는 운영되지 않습니다. 예배 중에는 앞에 있는 TV 스크린으로 예배가 진행됩니다.

4. 예배당에 들어가실 때 안내에 따라 체온을 재시고 세정제를 받아 손을 소독해야 합니다.

5. 헌금은 예전처럼 예배 입장할 때 헌금함에 넣으시면 됩니다. , 헌금봉투는 헌금함에 비치되어 있고 안내하시는 분은 봉투를 나눠 드리지 않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14:7-13

 

14: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14: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14: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4: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4: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말씀 말석의 축복]

 

누가복음 14장에는, 예수님께서 어느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아 가셨다가, 초대 받은 사람들이 서로 상석(上席)에 앉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경 안 쓰고 이 구절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주제를 망각하고 먼저 상좌에 앉으려다가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삶의 처세술처럼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어지는 11절에서 이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1)

 

결국 이 말씀은 우리 유교의 겸양(謙讓)이나 사양지심(辭讓之心)의 원리와 비슷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결국 겸손한 자가 더 존중 받고 교만한 자가 화를 당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숱한 경험과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자신이 말석(末席)에 앉게 되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면 그 덕목을 지키는 것이 무척 힘들어집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자리에 있든 내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일단 화부터 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화를 내죠? 먼저 그 자리를 마련한 주체자에게 화를 내고, 자기보다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며, 옆에서 그것을 구경하는 제3자들에게도 내 분노가 미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 화를 참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화를 내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님의 이야기처럼 애써 초대 받은 잔칫집에서 많이 벌어집니다. 잔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축하받기 위해 지인들을 초청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자리에선 평소에 참았던 짜증과 화가 표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잔치를 배설할 때는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초청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 왜 이들을 초청하라고 했을까요?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상석과 말석을 따로 챙겨주지 않아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 자기를 높일 수 있는 사람보다 자기를 낮출 수 있는 사람과 더 어울리고, 내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라고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그런 분이셨죠. 그분은 마땅히 우리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낮추시고 불합리하게 목숨까지 잃으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실 고만고만한 자리만 있을 땐 상석이라고 하는 자리는 그다지 자랑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진정 만족할 수 있는 상석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 어떤 자리나 그 어떤 감투도, 우리를 진정으로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 믿는 자들에게 말석에 앉아있다는 것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잠깐 세상 사는 동안 말석에 앉아 있다가 하나님께서 직접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상석에 앉아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기쁘고 감사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시 한 주가 시작됩니다. 이번 한 주,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고 힘든 자리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그 영원한 상석을 소망하며, 어디에 계시든 늘 겸손하고 지혜롭게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묵상]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 중에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자리가 있나요?

 

 4/4

 

[기도]

 

내가 앉아 있는 말석으로 인하여 더 큰 축복을 받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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