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주일예배가 다시 열립니다]

 

알고 계신가요?

1. 예배가 다시 재개되어도 아침식사 친교를 같이 못합니다. 그래서 당분간 예배시간이 오전 8시 반으로 늦춰집니다.

2. 자동차에서 내리시기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다른 성도와 6피트의 거리를 유지하셔야 합니다.

3. 주보를 통한 감염이 우려되기에 당분간 주보는 운영되지 않습니다. 예배 중에는 앞에 있는 TV 스크린으로 예배가 진행됩니다.

 

 

[본문]

 

이사야 5:20-25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5:23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5:24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5: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말씀]

 

수학 개념 중에 명제(命題)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제는 하나의 문장을 말하는데, 이 문장은 반드시 이거나 거짓이라는 속성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문장은 명제가 될 수 없습니다. 저를 가르쳤던 중학교 수학 선생님은 이렇게 예를 들어, 명제인 문장과 명제가 아닌 문장을 구분해 주셨습니다.

 

“‘철수는 키가 크다라는 문장은 명제가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키가 크다는 말은 몇 센티부터 큰지 기준이 없기 때문이죠.

한편 철수는 영희보다 키가 크다라는 문장은 명제가 될 수 있습니다. 철수와 영희를 비교해서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죠. 철수가 영희보다 크다면 참인 명제고 작다면 거짓이면 명제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비교대상이 있어도 명제가 될 수 없는 문장이 있어요. 영희는 선희보다 예쁘다는 문장이 그렇습니다. 예쁘다는 말은 기준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참과 거짓으로 말할 수 없는 술어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누가 여러분을 보고 못생겼다고 말해도 믿지 마세요. 그 문장은 결코 참이 될 수 없는 명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명제가 아닌 말이 명제인 말보다 더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말보다는, 그렇지 않은 모호한 말들이 더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모호한 말들을 가지고 말다툼을 벌입니다. 애초에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말싸움을 하기 때문에, 그 승패는 옳고 그름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더 복잡해 진 겁니다. 명제와 명제 아닌 문장들을 섞으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두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거기에 우리 인간의 욕심까지 섞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살게 됩니다. 사사기 시대가 그랬죠. 제대로 된 왕도 없고 율법도 제대로 서지 못해서 무질서만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성경은 이 시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21:25)

 

오늘날 우리 시대도 다르지 않습니다. 명백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공금을 사용하는 간부들, 그리고 뇌물을 받는 공직자들이 법적으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것을 보며, 때로는 하루하루 조금씩이나마 품는 우리의 양심들이 아주 덧없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인 이사야 5장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5:20)

 

명제인 것과 명제 아닌 것들이 뒤섞인 우리 세상은, 참과 거짓을 판단하기에 너무 혼돈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고의가 없어도 남에게 거짓정보를 주기도 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도 나를 원망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 문제없이 넘어가며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비웃고 삽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사사시대 때나 이사야 선지자가 한탄하던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살아야 합니까?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도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명제라고 믿고 그냥 넘어가도 괜찮을까요? 이 질문은 지금껏 많은 윤리학자들이 덤벼들었지만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죠. 우리 삶의 궤적에는 반드시 의미가 남겨져야 합니다. 아담 때부터 선과 악을 분별하며 사는 숙제를 우리는 계속 떠안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사명이며 몫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의 언행이 선했는지 악했는지를 언젠가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 속에서 선악을 분별하며 온전히 선을 행하고 악을 제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의 삶 속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온전히 구별되고 있습니까?

 

 

[기도]

 

선악이 혼재한 이 세상 속에서 온전히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나의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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