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7일 - 신들의 전쟁

2020.06.16 21:19

이상현목사 조회 수:153

[본문]

 

사무엘상 31:7-10 (새번역)

 

31:7 골짜기 건너편과 요단 강 건너편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도망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살던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이 여러 성읍으로 들어와서 거기에서 살았다.

31: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이 죽은 사람들의 옷을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31:9 그들은 사울의 목을 자르고, 그의 갑옷을 벗긴 다음에, 블레셋 땅 사방으로 전령들을 보내어,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들의 신전과 백성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였다.

31:10 그런 다음에 그들은, 사울의 갑옷을 아스다롯의 신전에 보관하고, 사울의 주검은 벳산 성벽에 매달아 두었다.

 

 

[말씀]

 

어릴 때 아이들끼리의 싸움에는 늘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먼저 싸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욕설이 오갑니다. 욕은 반드시 부모님에 대한 욕설이 들어갑니다. 주로 강아지와 그 자손을 빗대서 욕을 하죠. 누구나 그렇지만, 나에 대한 욕은 참아도 부모님에 대한 욕설은 참기 힘듭니다. 그래서 결국 주먹다짐을 하게 되죠. 그렇게 둘이 싸우다 한 아이가 어느 정도 승기를 잡게 되면 또 다른 아이는 울게 됩니다. 울면서 이렇게 얘길 하죠. 우리 엄마한테 이를 거야! 그럼 또 다른 아이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누구는 엄마 없냐? 실제로 이렇게 해서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의 시대에도 비슷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나라와 나라 간의 싸움은 그 이면에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의 문제로 발생하지만, 막상 전쟁이 터질 때는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god)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국가 간의 전쟁은 신들(gods)의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모든 나라들은 각자 자기들이 모시는 국가신(state god)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라 간의 전쟁은 국가신끼리의 전쟁이었고, 전쟁에서의 승패는 누가 더 강한 신이냐를 가르는 힘겨루기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긴 나라는 반드시 패전국의 신을 모욕합니다. 상대방 신을 모시던 신전을 불지르기도 하고, 자기네 나라 신을 그곳에서 모시도록 강요하기도 하죠. 경우에 따라서는 패전국 신도들이 신처럼 모시던 신물(神物)을 탈취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이웃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마지막 사사였던 엘리 제사장이 다스리던 시대에 블레셋이 쳐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궁여지책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지고 이 언약궤는 빼앗기게 됩니다. (삼상 4:10-11) 블레셋 민족은 이 신물(神物)을 자기들이 섬기던 다곤 신전에 놓습니다. (삼상 5:1-2) 이스라엘이 섬기던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했던 거죠. 또 바빌론이 유다 온 땅을 점령했을 때는 하나님을 모시던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웁니다. (왕하 25:9) 그리스가 쳐들어왔을 때는 성전을 불태우진 않았지만 그 안에 자기들의 국가신인 제우스 신상을 놓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 시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어느 나라가 더 강한 신을 모시고 있느냐를 전쟁을 통해 겨루었고 그 전쟁의 승패에 따라 약한 민족들은 사라졌고 그들이 모시던 힘 없는 신들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마지막 장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블레셋 군대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전쟁에서 패전국의 왕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죠.

길보아 산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결국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그 전쟁에서 죽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왕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철저한 모욕을 줍니다. 목을 자르고 갑옷을 벗긴 후에 블레셋에 이 승전의 소식을 알리게 되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승전의 보고를 받는 대상이 블레셋 백성들과 함께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들의 신전이었다는 겁니다. 즉 이 전쟁의 승리는 블레셋이 섬기는 다곤 신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께 승리한 것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신에게 보고를 했던 거죠. 그리고 나서 사울이 입던 갑옷을 신전에 보관하게 함으로써 전리품을 신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울왕의 시신을 성벽에 매달아 놓습니다. 그 당시 전쟁의 전통에 따라 신의 아들의 위치에 있는 왕을 모욕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함께 모욕했던 거죠.

 

저는 사무엘상 마지막 장의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시를 당하고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모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이방신에게 졌다고 믿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살아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고대 근동 때 그 많던 신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신들을 모셨던 여러 민족들이 하나 둘씩 망하면서 신들도 사라졌던 겁니다. 한 때 위세를 떨치던 바알(가나안)이나 다곤(블레셋), 마르둑(바빌론) 신은 오늘날 누구도 섬기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의 그 수많은 신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경배를 받는 신은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전쟁에서 무패(無敗)의 기록을 가져서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까지 남아있는게 아니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만 하면 집니다. 그리고 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백성들과 하나님이 철저하게 모욕을 당합니다. 하나님이 무능해서 졌던 게 아니죠? 우리 하나님은 오히려 참 신이었고, 이방 나라의 신들은 인간이 만든 우상이었을 뿐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시니이다 (97:9)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2:18)

 

고대 근동의 많은 나라들이 자기네가 모시는 신이 제일 강력한 신이라고 주장하며 위세를 떨쳤지만 결국 그 신들은 오늘날 모두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고 승리만을 위해 만들어졌던 신들은 모두 실패했음을 배우게 됩니다. 내 욕망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섬겼던 여호와 하나님 만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역사하고 있음을 오늘 하루 기억하시기 원합니다.

 

 

  [묵상]

 

혹시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이방신들처럼 여러분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 만들어진 신은 아닌가요?

 

 

 [기도]

 

내 욕심과 내 성공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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