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2일 - 회개의 신념

2020.06.11 20:24

이상현목사 조회 수:186

[본문]

 

요한복음 1:19-27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1: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1: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1: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1: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1: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1: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1: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말씀]

 

사람은 자기의 이름대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점을 치는 사람들은 이를 성명학이라고 부르죠. 이들은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에 담긴 여러 의미들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을 보면 정말 이 성명학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풀이하여 그들의 알려진 인생과 대조하는 것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습니다. 예컨대 이성계(李成桂)라 하면 오얏나무가 계수나무가 된다는 뜻인바 임금이 되었고, 이승만(李承晩)이라면 이씨 왕족의 계승을 늦게 이룬다는 뜻으로 실제로 늦게 대통령이 되었습니다.이게 꿈보다 해몽인건지, 아니면 그렇게 잘 맞는 사람들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지 궁금해집니다. 정말로 이름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진 분들은 다름 아닌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고, 그분들은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이 지어주신 이름에 맞춰 우리가 살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죠. 아마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이름을 부모님들이 어떻게 지으셨는지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내 이름의 지어진 유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에 맞는 성향을 갖게 되기도 하니까요. 이름이 지어질 때와 같이, 부모님께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든 혹은 내 스스로 결심한 것이든, 내가 어릴 때 품었던 어떤 신념은 내가 평생 따를 좌우명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평생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았던 신앙인입니다. 당시 1세기 유대 땅은 세계 역사에서도 가장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세례요한이 태어나기 수십 년 전부터 로마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고, 유대를 다스리던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의 권력에 빌붙어 유대백성들에게 종교적 성결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가장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은 서민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성전에 이중으로 세금을 내야 했고, 일자리가 없어 경제적 빈곤에 시달렸던 서민들은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약속에 따라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 메시야는 당연히 유대백성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를 메시야로 부르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말했습니다. (1:29) 모든 사람들이 메시야를 로마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하는 유대인의 왕으로 기대하고 있을 때, 세례요한은 고난 받는 힘없는 어린 양을 기다렸던 겁니다.

세례요한이 메시야를 세상 죄를 짊어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고백했던 것은, 유대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했을 때, 세례요한은 유대 땅에 닥친 이 모든 불행들이 닥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로마를 통해 그들을 벌하셨고,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다시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회개함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던 겁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식했을 때, 그 메시야는 유대 땅을 로마로부터 힘과 권력을 빼앗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백성들의 죄를 회개시킴으로 구원을 주실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눈에는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갈 어린 양으로 보였던 거죠.

 

그렇다면 세례요한은 죄와 회개라는 종교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 이슈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요? 이 장면만 본다면 세례요한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신음하는 유대인들을 외면하고, 다른 종교지도자들처럼 로마의 통치자들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세상을 등지며 회개의 세례만 주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뒷이야기가 있죠. 헤롯이 악행을 저질렀을 때 가장 먼저 용기를 내서 헤롯을 비판했던 것도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결국 그 비판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었지만, 그가 평생을 노력했던 그의 믿음과 신념은 우리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사회를 바라볼 때 때로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보면서 더욱 절실히 깨닫습니다. 정말 누군가 좋은 정치 지도자가 나와서 이 사회를 뒤집어야 한다는 신념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회개입니다. 세례요한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이 정결하고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때, 이 사회를 향한 우리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이 세상을 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다른 무엇보다 회개의 신념을 가지고 내 자신과 이웃을 변화시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그 좌우명에 맞게 오늘도 살고 계시나요?

 

 

[기도]

 

먼저 내 자신을 정결케 하고 내 삶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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