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9:23-27

 

9: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9: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말씀]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교우들께서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대로 하나님의 일을 나눠서 하는 것을 보는데, 정말 그 질서와 조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믿지 않는 분들을 교회로 초청해 오는 은사가 있고, 어떤 분은 그렇게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을 돌보고 가르칩니다. 또 어떤 분은 찬양으로, 어떤 분은 봉사로 섬깁니다. 이러한 조각조각의 은사들이 모여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거죠.

오늘 사도행전 9장의 본문말씀에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사도 바울과 전도여행을 다녔던 바나바입니다. 당시에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기 전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의 회심을 듣고 그를 사도들에게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이전에 바울은 불신에 가득 찬 유대인들 편에 서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회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누구도 바울을 믿어주지 않았고 만나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바울을 찾아왔고, 그를 다른 제자들에게도 데리고 가서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공증해 줍니다.

 

본래 바나바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깊게 감화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다른 제자들보다 늦게 합류한 늦깎이 성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는가 특히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는가 하는 경험들이 사도들의 권위를 정해주는 서열의 기준이었는데요, 바나바는 뒤늦게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육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서는 그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죠.( 11:24) 그리고 두려워하여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던 바울을 바나바만큼은 믿어주고 그를 제자들에게로 소개해줍니다. 많은 교회역사가들이 사도바울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의 서신이 없었더라면 이천년 전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한때의 유행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의 서신을 통해 그의 신학이 우리에게 전해졌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이 그리스도교가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나바가 애써 바울을 제자들에게 소개해줬던 그 모습이 얼마나 값진 용기였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나바가 바울을 소개해준 장면을 보면 바나바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9:27)

 

바나바는 그가 듣고 본 것을 제자들에게 증언한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증언이 특별했던 것은,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 증언이 아니라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에 대해 누군가에게 증언한다는 의미죠. 그런데 바나바의 이야기를 보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증언해야 할 그 누군가는, 비단 믿지 않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도 해당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나바가 바울을 천거했던 은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기존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이기에 더욱 값진 은사로 기억되고 있는 겁니다.

특별히 오늘날 바나바의 은사는 더욱 더 중요해졌습니다. 요즘 시대가 그렇죠.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끼리 어떤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이,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끼리 소통을 갖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거겠죠. 하지만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며, 바울을 향해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바울을 데려가서 설득했던 바나바의 은사를 기억하기 원합니다. 전도는 불신자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고집과 편견이 있고 그로 인해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는 사람들끼리도 소통하고 교류하며 서로의 경험을 증언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끼리의 소통과 대화가 멈추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모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벌써 세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세 달이 지나자 슬슬 불안해집니다. 곧 다시 교회가 열리겠지 싶으면서도, 다시 열렸을 때의 교회가 어떤 모습일지 전혀 예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더더욱 바나바의 은사가 필요할 때가 되었습니다. 흩어져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다시 모으고, 다시 새로운 교회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전도하고 증언하며 소통하는 여러분의 편입니다. 이 환난이 끝나고 우리가 다시 교회에 모일 때, 불신과 편견을 내려놓고 서로 간의 소통과 대화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크게 일어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상]

 

우리 교회를 위해 여러분이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혹시 다른 교우들에게 천거하고 싶은 지체가 있습니까?

 

 

 [기도]

 

내 입술과 내 삶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도 증언하는 은사가 끊이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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