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18:1-8

 

18: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18: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18: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18: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말씀 하나님이 보낸 일꾼]


1963년에 상영된 들백합 (Lilies of the Field)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기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시드니 포이티어가 흑인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요, 이 영화는 굉장히 종교적인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호머 스미스는 군대를 마치고 아리조나 사막에서 낡은 차를 몰며 떠돌던 날품팔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낡은 수녀원 앞에서 차가 고장 나 신세를 지게 됐는데, 그 수녀원은 동유럽에서 피난 온 다섯 명의 수녀들이 살고 있던 곳입니다. 그곳 수녀들은 영어도 잘 못해서 호머와 의사소통도 거의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둘 사이의 미스커뮤니케이션으로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수녀들은 이 흑인 주인공이 하나님이 보낸 천사라고 여기며 이것저것 일을 부탁합니다. 호머는 그냥 잠시 머물며 일당이나 얻어가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수녀들은 일을 열심히 해주는 호머에게 고맙다는 말은 안 하고, 도리어 수녀원 안에 예배당을 새로 지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호머는 침례교인으로서 카톨릭 성당을 지어주는 것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돈을 받지 않으면 일을 해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호머는 수녀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임금을 요구하며 누가복음 10장을 인용합니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10:7)

 

반면에 수녀는 마태복음 6장 말씀으로 대응합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6:28)

 

1.jpg


결과적으로 이렇게 아웅다웅 다투며 호머는 수녀들과 정이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예배당도 짓고 그들에게 영어도 가르쳐 줍니다. 심지어 예배당을 지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호머는 다른 곳에서 막일을 하며 돈을 벌어 오기까지 합니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 중에는,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도와주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그런 경험도 많이 합니다. 내 힘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적절히 보내어 도와주시곤 합니다. 특히 교회생활을 하면 그런 일들을 많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일꾼들은 대개 고귀한 날개를 가진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호머 스미스처럼 평범하고 때로는 불평많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죠. 처음에는 정말로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준 일꾼이 맞나? 하고 의심이 들지만, 함께 어울리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점차 모두의 필요를 채워주는 하나님의 일꾼이 됩니다.

호머 스미스도 처음부터 수녀들을 도와줄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냥 같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이들이 영어를 더 잘했으면 좋겠다, 이들이 섬기는 마을 사람들이 건물이 없어서 황량한 벌판에서 그냥 예배를 드리는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이 쌓이고 쌓였고, 이로 인해 정말 하나님의 천사처럼 그들을 돕게 된 겁니다.

 

이 영화를 통해 느낀 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일꾼들은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죠. 첫째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는) 무척 평범하고 흔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돕기 위해 보내주신 사람들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데도 우리가 못 알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그랬죠. 2000년 전에 우리 인간들에게 오셨지만, 너무 평범한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주위를 둘러보시기 원합니다. 물론 당장은 막막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움 받는 것을 무작정 거절하고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나만 힘들고 나만 소외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신앙의 모습이 아니죠.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시기 원합니다. 우리에겐 함께 동역할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보내주신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그랬습니다. 함께 비즈니스를 같이 하던 브리스길라아굴라가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고 (2-3),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회당장 그리스보가 바울의 사역을 돕게 됩니다. 어디 멀리서 - 하고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찾은 동역자들이었던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 감당할 여러분의 동역자들이 발견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여러분을 돕고 있는 하나님의 일꾼은 누구입니까?

 

 

 [기도]

 

내 사역을 도와줄 동역자를 발견하게 하소서. 또한 내 자신도 누군가의 동역자가 되게 하소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0 2020년 6월 18일 - 믿음의 씨앗 이상현목사 2020.06.17 168
79 2020년 6월 17일 - 신들의 전쟁 이상현목사 2020.06.16 153
78 2020년 6월 16일 - 중심을 보라 file 이상현목사 2020.06.15 153
77 2020년 6월 15일 - 판결의 유예(猶豫) 이상현목사 2020.06.14 166
76 2020년 6월 13일 - 익명의 그리스도인 file 이상현목사 2020.06.12 171
75 2020년 6월 12일 - 회개의 신념 이상현목사 2020.06.11 186
74 2020년 6월 11일 - 바나바의 은사 이상현목사 2020.06.10 185
» 2020년 6월 10일 - 하나님이 보낸 일꾼 [1] file 이상현목사 2020.06.09 202
72 2020년 6월 9일 - 그러나 이제는 이상현목사 2020.06.08 182
71 2020년 6월 8일 - 다다익선? 이상현목사 2020.06.07 167
70 2020년 6월 6일 - 추가하면 가벼워지는 멍에 [1] 이상현목사 2020.06.05 179
69 2020년 6월 5일 - 그를 데려가라 이상현목사 2020.06.04 197
68 2020년 6월 4일 - 허무와 소망 이상현목사 2020.06.03 179
67 2020년 6월 3일 - 기우 file 이상현목사 2020.06.02 192
66 2020년 6월 2일 - 방해하는 예수의 영 이상현목사 2020.06.01 197
65 2020년 6월 1일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이상현목사 2020.05.31 187
64 2020년 5월 30일 - 남은혜 집사님 간증 이상현목사 2020.05.29 210
63 2020년 5월 29일 - 죄인들의 공동체 이상현목사 2020.05.28 186
62 2020년 5월 28일 - 버리지 못하는 옛 습성 이상현목사 2020.05.27 182
61 2020년 5월 27일 - 가장 지혜로운 자의 노년 이상현목사 2020.05.26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