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16:6-10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말씀]

 

한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중국선교에 뜻을 가지고 기도하다가 드디어 기회가 되어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선교사는 열매다운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 언어와 문화의 큰 차이만을 느낀 채 선교사역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평생을 꿈꿔왔던 중국 선교사역이 커다란 실패를 남기고 끝이 나자 그 선교사가 품었던 소망과 자부심은 완전히 무너졌고 마음의 상처로 인해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선교사의 재능을 아꼈던 신학교 동기목사 한 분이 시골의 작은 교회 하나를 소개해줬고 그곳에서 그 선교사는 평범한 시골목회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선교사의 설교와 목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 시작했고 그 교회를 출석하기 위해 인근의 도시에서 차를 끌고 사람들이 모여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이제야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올바로 발견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본인이 중국에서 7년 동안 선교했던 경험이 그 목회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곳에서 사역을 했으면 7년의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이곳에서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보다 잘 감당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후회하곤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목회자의 7년 동안의 중국선교는 시간 낭비였을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허비되는 듯 느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했을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선교사님도 애초에 중국선교에 대한 열망보다는 일반 목회자로서 사명을 품었다면 7년이라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분의 중국선교가 완전히 실패하지 않고 애매하게 열매를 맺었었다면, 그분이 선교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올 마음을 품었을까요? 아마 곧 열매를 맺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오랜 시간을 더 허비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분의 국내 목회자로서의 비전은 영원히 품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분의 선교를 방해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는 바울사도가 선교 중에 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방해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선교를 하려고 하는데 성령이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자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에 이릅니다. 그리고 비두니아, 즉 오늘날의 흑해 연안으로 가려고 하자 이번에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꿈을 통해 그가 소아시아에 머물러선 안되고,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 지역으로 넘어가야 함을 알게 됩니다.( 16:6-10) 이러한 성령의 방해는 예수님도 피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곧바로 사역을 시작하지 못하고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도록 광야로 몰아낸 것은 다름 아닌 성령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12)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 조지아에 선교의 뜻을 품고 선교사로 왔었습니다. 그 위대한 웨슬리의 선교는 어떤 결실을 맺었을까요? 완전히 망했습니다. 영국에서 해왔던 목회 스타일을 그대로 고집하다가 현지 미국인들에게 비난받기 일쑤였고, 그가 우호적으로 대했던 미국 네이티브 인디언들에게도 버림 받았습니다. 결국 이리저리 갈등만 일으키고 상처를 주고받다가, 웨슬리는 19개월 만에 미국선교를 포기하고 도망치듯이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웨슬리의 진짜 히스토리는 그 다음에 시작됩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 해 어느 날,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에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다는 커다란 회심의 경험을 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감리교 운동이 커다란 결실을 맺은 곳이 영국이 아니라, 그 자신이 크게 실패를 경험했던 미국 선교지였다는 겁니다. 웨슬리 자신은 실패했지만 웨슬리의 제자들이 미국에 감리교회를 수도 없이 세웠고, 2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도 그 미국감리교회 중에 하나인 가나안 교회에 모이게 된 겁니다.

 

같은 하나님의 일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가 있고 그에 맞는 적성과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갈망하며 열심을 품는다고 해서 뭐든지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맞는 분야를 찾지 못하면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하더라도, 바로 그 하나님을 통해 방해 받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은 우리에게 인내와 연단을 갖게 하고, 그 사명을 더욱 부여잡고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해는 내가 잘못된 비전과 사명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로 의심케 합니다. 그리고 내 은사와 적성에 맞는 다른 사명을 갖도록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방해를 받을 때 그 중국 선교사나 존 웨슬리처럼 그 순간에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절망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비전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알았을 때 힘든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고 새로운 사명을 접할 때,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은사를 올바로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지경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방해를 받아 지금 제 자리에 멈춰서 계시지는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조만간 여러분의 은사와 적성에 더 합당한 새로운 비전과 사명으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주실 겁니다. 여러분의 그 새로운 사명들로 인해 더욱 더 즐겁고 기쁜 사역이 우리 가나안 교회에 끊이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이 정말 갈망했던 하나님의 일이 좌절되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정말 적합한 사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도]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든 사역들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내 마음과 내 삶을 주관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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