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20:7-12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20: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20: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20: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20: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말씀]

 

성서의 어떤 말씀은 파편적인 이야기로 이해할 때보다 유형이나 모델로써 받아들일 때 더 깊은 이해를 가져다주곤 합니다. 가령, 로마 교황청에 있는 시스틴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벽화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교회건물은 교황 식스투스 4세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의 그림 중에 노아의 홍수에 관한 그림이 있는데 여기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는 모양과 색깔에 있어 시스틴 성당의 건물모양과 똑같다고 합니다. 애초에 식스투스 4세가 이 교회를 지을 때 그 모델을 노아의 방주로 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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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교황은, 노아의 방주가 물로 세상이 멸망할 때 구원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피난처였듯이, 교회 또한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처소라고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여러분들도 노아의 방주와 교회를 동일시하는 설교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데 있어 방주는 교회의 모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사도행전 20장에는 바울의 강론을 듣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졸다가, 그만 밑으로 떨어져 죽음을 당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설교를 듣다 졸았던 신도의 죽음.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것도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 조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모델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유두고라는 이름은 당시 노예들이 많이 갖고 있었던 이름이지만 실제 성서에서 이 유두고라는 청년이 노예였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사도행전을 쓴 저자에게는 이 유두고라는 청년의 신분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니다. 이 유두고라는 청년을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 신분 여하에 관계없이, 이 청년처럼 죽음을 맞이할 시한부 운명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유두고는 피곤하여 졸고 있었습니다. 깨어 말씀을 들으면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창가에서 떨어질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잠들면 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유두고는 깨어 있지도 않았고 자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 중간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조는 것이랑 자는 것은 다르죠. 게다가 유두고가 걸터앉은 곳은 창이었습니다. 떨어지더라도 안쪽으로 떨어지면 살고 바깥쪽으로 떨어지면 죽습니다. 죽음과 생명의 중간지점에서 유두고는 자고 있지도 깨어 있지도 않고, 애매하게 졸고 있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쩌면 우리들의 신앙도 유두고처럼 이렇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유두고가 죽은 날은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다면 전날 안식일을 지켰을 테고, 그 다음날까지 종일 말씀을 사모하여 밤이 새도록 바울의 강론을 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다음날엔 바울이 먼 곳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유두고와 거기 모인 사람들은 바울의 말씀을 더더욱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종일 말씀을 열심히 경청했고, 그만 밤이 되어 피곤한 마음에 졸았던 것 같습니다.

유두고가 졸았던 상황이나 그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사모하려고 하지만, 인간적인 피곤함과 육신의 연약함으로 우리는 죽음과 삶 가운데에서 졸고 있을 때가 많죠. 여기서 좀 더 살펴보아야할 것은, 성서는 유두고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바울은 추락하여 숨이 멎은 유두고를 살려냈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청년으로 인해 더욱 큰 위로를 받게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의 인간적인 연약함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을 통해 구원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더 크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고 좌절할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연약함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더 큰 능력을 믿고 의지하시길 원합니다. 오늘은 유두고의 이야기처럼 인간적이고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더 큰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놀라운 하루가 되시길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은 언제 여러분의 연약함이 느껴지시나요? 그리고 그 연약한 모습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기도]

 

애매하고 연약한 나의 모습 속에서,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더 큰 능력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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