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16:19-31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16: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16: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6: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16: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16: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16: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말씀]

 

연극이나 드라마에서 비극은 무척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희극이나 영웅서사시는 주인공이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이하지만, 비극은 그 반대의 결말로 우리에게 눈물과 슬픔을 주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비극을 행위의 모방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행위는 어느 특정 개인의 한 개별적인 행동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정서와 감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비극적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불행해지는 것을 보며 함께 공감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참 이상한 감정입니다. 주인공이 불행해지는 걸 원하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주인공이 갈등과 불행 속으로 추락하는 내용의 드라마나 영화에 시청자와 관객이 몰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비극에 매료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시한부 인생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을 동경하는 여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은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공감하고 이로 인해 함께 울며 심리적 정화(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주인공들이 어처구니 없는 갈등에 빠지며 추락하는 막장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화를 내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런 막장 드라마는 시청률도 좋고 대부분 마지막 결말까지 보게 됩니다. 이런 막장 드라마도 어쩌면 비극에 대한 동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자신이 불행에 빠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 불행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비극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그렇습니다. 오이디푸스나 멕베스와 같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불행한 미래에 대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죠. 그들은 이 불행의 운명을 벗어버리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그 예언대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비극의 주인공처럼 자신에게 놓인 불행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 본문인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읽어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으로 이해하셨을 겁니다. 저는 조금 다른 관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앞서 언급한 비극의 주인공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자와 나사로는 각각 죽어서 부자는 지옥으로, 나사로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지옥의 고통이 자신의 다섯 형제들에게도 이어지는 것이 두려워, 나사로를 그 형제들에게 보내서 이러한 지옥의 존재를 그들에게 알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이야기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날지라도 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16:31)

 

결국 예수님은 부자의 청이 거절되었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을 통해,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언을 통해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사람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알린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결코 들리지 않는다는 현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현실은 그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그 끝은 결국 불행과 패망이지만, 끝까지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삶의 비극의 단면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전하신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증언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예수님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진정 소용이 없을 이 비극적인 말씀의 증인이 됩니다.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비극의 주인공처럼요.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누군가에게는 헛된 메아리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분의 부활과 말씀이 헛된 채로 끝이 날 수밖에 없는 걸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비극의 주인공과 같은 길을 걸어갔지만,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교회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해피엔딩의 결말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것은 때론 지치고 힘든 길입니다. 아무리 전해도 듣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귀를 막고 있는 누군가에게 외치셨듯이, 우리의 복음전파 역시 계속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결코 헛되지 않았듯이, 여러분이 삶 속에서 느끼는 모든 절망들이 결국 해피엔딩으로 변하길 기도합니다.

 

 

 [묵상]

 

여러분 삶에 있어 비극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정말 비극으로만 끝났습니까?

 

 

 [기도]

 

나의 모든 비극을 결국 해피엔딩으로 변화시키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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