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3일 – 태초 말씀의 비밀
2021.04.12 11:32
[알리는 말씀]
이번 주일에 다시 대면예배를 시작함에 따라, 1년 넘게 여러분들과 매일 함께 나눠 온 이 묵상자료는 이번 주로 끝이 납니다. 다음 주부터는 수요예배가 재개될 때까지 매주 수요일에만 묵상자료를 나눌 예정입니다. 지난 설교 때 우리가 진정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주 묵상자료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주제로 이뤄집니다.
[본문]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
요한복음은 무척 신비로운 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 자체가 다른 복음서들보다 늦게 기록되었었는데요, 그만큼 그리스도에 대해 더 깊은 신학적 논의가 이 책에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1의 오늘 본문입니다. 사실 성경책들 중에서 맨 처음 첫 구절이 가장 강력한 힘을 담고 있는 책은, 단연 창세기일 겁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이것만큼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강력한 구절은 없을 겁니다. 이 문장 하나에, 창세기가 증거하고자 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기록된 다른 성경책들도 창세기 1:1만큼 강력한 첫 문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은 창세기의 첫 구절과 비견하여 결코 떨어지지 않는 아주 강력한 첫 문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앞서도 말했듯이 요한복음은 신약성서 중에서도 가장 늦게 기록된 편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기록되었던 다른 복음서나 서신들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를 훨씬 더 깊고 풍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태초부터 선재(先在 pre-exist)해 계셨던 분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바로 1:1에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이 1:1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장인데요, 저는 이 구절의 비밀이 ‘말씀’에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말씀’으로 사용된 희랍어 단어는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당시 그리스-로마 시대에 로고스는 ‘논리’나 ‘이치’를 뜻하는 단어로,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에 편만한 원리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면 더욱 더 요한복음 1:1이 복잡해 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할 것을 권면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에, 즉 이 세상이 창조되는 때에 ‘말씀’이 존재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창세기 첫 장의 내용을 반복한 겁니다. 창세기에서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의 방법이 ‘말씀’이었다는 거죠. “빛이 있으라”고 하면 빛이 생겨났고, “생물이 종류대로 생겨나라”고 하면 그 말씀대로 이뤄졌습니다. 결국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하는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창세기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겁니다.
그런데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둘 이상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어야 말씀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혼잣말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죠. 항상 그 말씀에 응답하는 피조물들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면 빛이 그 말씀에 응답하여 나타났고, 다른 만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씀’은,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순종하고자 하는 피조물을 연결하는 매개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2000년 전에 육신을 입어 이 땅에 나타난 이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였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실제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피조물을 연결하는 중재자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멀어졌지만,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시사,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예전처럼 화목하게 만드신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중재와 희생을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번 한 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깨닫기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은 여러분과 하나님을 다시 화목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와 희생을 믿고 계십니까?”
[기도]
죄 많은 우리를 사랑하시사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중재와 희생을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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