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8일 – 달밤의 질주
2021.04.07 12:42
[본문]
누가복음 24:30-35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말씀]
미국 와서 느꼈던 경험 중의 하나는, “참 달이 밝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한국에 사셨던 분들은, 그 때는 달이 무척 밝았던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한국의 밤에 떠오르는 달은 더 이상 밝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공기가 많이 오염되어서 달이 밝게 떠도 뿌옇게 보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아무리 맑은 날씨에 달이 떠도 전기와 조명의 발전으로 하늘의 달이 더 이상 밝아 보이지 않는 탓일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상대적으로 공기도 깨끗하고 어두운 곳도 많아서 달이 밝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정말 불빛 하나 없는 곳에 달이 떠 있으면 온 세상이 다 보일 정도로 환하게 비추는 것을 느낍니다. 실제로 옛 문헌에 보면 달밤에 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예전에는 보름달이 떠서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밤은 평소의 밤과는 다른 날이었다는 거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유월절 다음날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그 날 무엇을 하셨는지 정확하게 추적할 순 없습니다. 복음서마다 그 증언이 조금씩 엇갈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증언은 예루살렘에서 여인들에게, 혹은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증언들과 조금은 결이 다른 또 다른 증언이 있습니다. 바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은 유일하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증언을 담고 있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제자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고, 그 와중에 두 명의 제자가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섭니다. 이들이 ‘제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에 열 두 제자와 헛갈릴 수도 있지만, 열 두 제자에 속하지 않았던 또 다른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두 제자 중 한 명의 이름을 글로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눅18:25). 아마도 열 두 제자처럼 예수님을 근거리에서 접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둘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이전과 좀 달랐던 탓인지, 이들은 예수님과 동행하여 엠마오까지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엠마오라는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걸어서 3-4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려 했던 두 제자는, 아침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퍼진 것을 듣고 진상을 확인하느라 돌아가는 길이 지체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심 이후에나 출발을 했겠죠. 세 사람이 엠마오에 도달했던 시간은 날이 슬슬 저물어 갈 때쯤이었습니다 (눅 24:29). 그래서 그들은 함께 동행하던 예수님에게 하루 집에서 묵고 내일 출발하라고 강권하였고, 집에서 예수님과 저녁을 먹게 됩니다.
예상컨대, 이 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이전에 저녁만찬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을 겁니다. 아마도 최후의 만찬에도 이 두 제자가 함께했을 거라 믿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하면,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타이밍이 정확하게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축사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음식을 먹기 전에 축사하는 모습은 그 당시엔 아주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엠마오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기 위해 축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가 예수님인 것을 비로소 알아봤던 거겠죠. 하지만 그 순간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제자들은 그 동행했던 사람이 예수님인 것을 그제야 알아채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예루살렘에 어떻게 돌아갔을까 하는 겁니다. 이 둘은 엠마오를 지나 계속 길을 가려고 했던 예수님을 붙잡고,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라고 말했었습니다. 당시 가로등도 없던 시절에 어두운 길을 걷는 것은 무척 위험했기 때문이었겠죠. 그렇게 말했던 그들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밤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되돌아왔던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가룟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자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은 도착한 시간이 다음날 새벽이 아니라 늦은 저녁이나 밤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한 마디로 그들은 엠마오에서 예루살렘까지 급히 뛰어서 돌아온 겁니다.
여기서 그들이 질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나옵니다. 바로 보름달입니다. 유월절은 항상 니산월 15일, 즉 음력 15일 보름에 있습니다. 그 다음날인 16일엔 조금은 기울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보름달처럼 밝은 빛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그 달빛을 의지해서 이 두 제자는 달밤에 예루살렘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겁니다.
개인적으로 두 제자와 예수님이 엠마오를 함께 걸어갔다고 하는 이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부활한 당일 날,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으로 난리가 났는데, 예수님은 한가로이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두 제자와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던 겁니다.
분명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을 바꾸는 급박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급박한 것은 세상이었지, 예수님이 아니셨죠. 예수님은 느릿느릿 두 제자와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으로 부활 후 첫 날을 보내셨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완전히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 된 우리들에게 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며 함께 얘기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분입니다. 즉,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함께하시는 임마누엘로 오신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인생길에 늘 함께하심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기 원합니다.
[묵상]
“달빛이 세상을 밝히는 밤에 일어났던 일 중에 특별히 기억나시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기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언제나 내 삶 가까이 거하시며 나를 주관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