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1:45-50

 

11: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11: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11: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11: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말씀]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1장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퍼진 직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죽어서 악취를 풍기던 육체가 다시 살아났으니 그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하는 소문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 소문이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어가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공회를 소집하여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공회에 소집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인기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예수를 그대로 놔두면 그의 기적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걸까요?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11:48)

 

그들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예수님이 인기가 올라 정말 왕이라도 되면, 유대 땅을 식민지로 삼고 있는 로마 군대가 다시 쳐들어와서 땅을 빼앗아가고 자신들의 민족을 말살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40년 후에 이 예상은 정말로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는데 2000년이 걸리게 되죠. 공회에 모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걱정한 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 중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11:49-50)

 

한 사람이 희생해서 온 민족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예수 한 사람만 죽이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거라는 거죠.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그들이 걱정했던 로마와의 전쟁은 당장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죄 없는 소수를 희생해서 다수를 살리겠다는 계산이 정말 옳은 걸까요?

 

사실 우리 민족만큼 2000년 전 유대사회를 똑같이 경험한 민족도 없을 겁니다. 일제의 식민지 때도 그랬고, 독재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그랬습니다. 지배하는 자들이 늘 내세웠던 논리는 사회의 안정이었습니다. 소수가 희생 당하더라도 다수가 살고 있는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는 거죠. 그 논리를 바탕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소란을 피웠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감옥으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징용으로, 정신대로 끌려갔습니다. 몇몇 소수의 희생으로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죠. 독재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재권력의 부당성을 외치며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끌려 가기도 했고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안정을 위한다는 말로 영문도 모르게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 나라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소수를 희생해서 민족 전체를 살리겠다는 논리 뒤에는 항상 권력을 탐하는 누군가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유대사회도 마찬가지였죠. 공회에 모인 사람들은 죄 없는 예수님을 죽여서라도 전체의 안정을 꾀하겠다고 허울좋게 말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로마제국에 빌붙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욕망이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족과 백성을 위한 참 지도자는 절대로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참 지도자죠. 예수님이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심지어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우리들을 위해 예수님은 기꺼이 그 귀한 생명을 내놓으셨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예수님처럼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인 거죠.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사회는 점점 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신을 희생하려는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져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다수의 안정을 주장합니다. 그로 인해 소수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군부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고, 아틀란타를 비롯해 미국 각지의 이민자들이 핍박과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진정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이민자들은 이곳 미국에 살면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입장보다는 오히려 강요를 당하는 입장일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주로 나와 친한 사람들, 그리고 나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죠. 어리석게도 내 욕망을 위해, 내 가족과 이웃에게 혹은 같은 교회를 다니는 어느 교우에게 희생을 강요합니다. 나와 친분이 있다고, 혹은 나보다 약하다고,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선 안되겠죠.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항상 내 자신이 먼저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의 강령입니다.

 

 

 [묵상]

 

아쉬운 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희생시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기도]

 

이 세상에 죄 없이 희생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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