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갈라디아서 5:16-17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

 

우리 인간은 욕망의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성현(聖賢)들은 우리 사회의 악()이 인간의 욕망에서 나온다고 경고합니다. 가령 불교는,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리는 욕망과 집착이 우리를 더욱 괴롭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유교의 맹자도, 욕망이 우리 인간의 선한 본성을 가려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고 얘기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어떨까요?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금욕과 경건한 삶을 권면합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만 해도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세속을 떠나 광야에 수도원을 짓고 살던 수도사들이었습니다. 당시 수도사들의 일기를 보면, 오늘도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회개하는 내용이 종종 나옵니다. 물욕과 성욕 뿐만 아니라, 식욕까지도 멀리하려고 했던 거죠. 이 욕구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의 생각은 죄와 악한 행실로 나타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속한 개신교회는 일부 욕망에 관대해졌습니다. 특히 미국의 발전과 결합된 개신교회는 식욕과 물욕에 대해 무척이나 관대한 편이죠. 그래서 미국 교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하나님 사역에 열심히 사용하라고 가르쳤습니다. 100여 년 전에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록펠러나 헨리 포드가 돈을 많이 벌어 교회에 헌금도 많이 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설교에서 자주 듣던 예화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 자체를 물질의 축복이라고 여겼던 미국 개신교회의 안타까운 민낯이죠.

미국 개신교회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60-70년대에 경제개발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많은 헌금을 바쳤고, 교회 목사님은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의 축복을 더 많이 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제가 처음 신앙생활을 하던 80년대도 이런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질의 축복은 신실한 신앙인들의 당연한 보상으로 여겨졌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엔 하나님께 물질의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습니다. 이들에게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들의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해 주는 점집과 다르지 않았던 거죠.

 

사람들의 이러한 물질적인 욕망을 부추긴 사람들은 개신교회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제가 신학을 처음 공부하던 90년대만 해도, 목회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형교회의 성장형 목회를 원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두들 큰 교회의 목사님이 되고 싶어했던 거죠. 그러니 이들의 목회도, 더 큰 예배당과 더 많은 교인들을 확보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위대하고 더 큰 교회사역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더 많은 교인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돈 많은 사람이 교회에 오기를 기대했죠.

 

분명 누군가는 큰 교회 사역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작은 교회를 섬겨야 할 목회자들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이 우리 개신교회의 현실이죠. 하지만 목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죄다 큰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만 원하니, 이쯤되면 그들이 목회를 하는 이유도 사명보다는 욕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말로는 사명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크고 더 부유한 교회를 원하는 물질적 욕망이 그들 맘 속에 자리잡고 있는 거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욕망과 사명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살 수 있을까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교회 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욕망과 사명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욕심과 내 욕망 때문에 그 일을 해왔다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해놓고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땐, 함께 사역한 사람들을 향해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했다고 믿어왔는데, 결국 그것조차 내 욕망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거죠.

 

이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6)

 

결국 내 욕망과 하나님의 사명이 뒤섞인 경우에, 그것을 구분하는 힘은 성령에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령을 따라 행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계속 내 손익을 따지게 되고 무언가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내 욕망이 완전히 다스려지지 않은 상태임을 뜻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입을 때는, 내 욕망을 채울 때가 아니죠. 오히려 내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더 큰 능력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금은 팬데믹으로 인해 그 동안 열심히 교회를 섬겨오셨던 많은 분들이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감당해왔던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더 되돌아보고, 혹시라도 우리의 욕망이 거기에 얽혀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의 마음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곧 교회가 회복되고 다시 하나님의 사명을 시작할 때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사역이 되기를 기대하고 또한 기도합니다.

 

 

 [묵상]

 

여러분이 감당해왔던 사명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욕망이 숨어있었던 적이 있나요?

 

 

[기도]

 

내게 맡겨진 하나님 나라의 사명 안에서 내 자신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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