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40-42

 

1: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1: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1: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말씀]

 

미국생활을 하게 되면 표준어 사용이 힘들어집니다. 저도 90년대 배웠던 표준어로 글을 쓰기 때문에, 제 글도 이제는 지금 한국에서 통용되는 표준어로 볼 때는 잘못된 표현이 많이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 저보다도 더 예전에 공부하셨던 우리 교우분들은, 지금 사용되는 표준어가 저보다도 더 어색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럼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애끓다애끊다 중의 어떤 단어가 지금 표준어에 맞을까요?

 

두 단어는 모두 표준어입니다. 다만 뜻이 조금 달라집니다. 는 우리말로 몸 속에 있는 창자를 뜻합니다. 물론 여기서 창자는 단지 우리 몸의 기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나 정신과 같은 내면의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애 먹었다, 애썼다, 애가 탔다는 말에 나오는 가 모두 마음을 크게 썼다는 의미가 되는 거죠.

그래서 애끓다는 말은 정확하게 말하면, 창자가 끓어오를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용됩니다. 한편 애끊다는 말은 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아픔을 뜻합니다. 창자가 끓어오른다는 말과 창자가 끊어진다는 말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좀 다르죠. 어떻게 다른지 우리말을 쓰시는 분이라면 여러분들 모두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창자가 끓어오르는 기분은 주로 분노와 안타까움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되지만,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은 극한의 슬픔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됩니다.

 

애끓다는 말은 잘 모르겠지만, 애끊다는 말은 그 유래를 알 수 있는 중국 고사(故事)가 있습니다. 중국의 516국 시대 때 진나라에는 환온(주후 312~373)이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한(成漢)을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중국 서부인 촉나라로 쳐들어 갔습니다. 그 때 삼협이라는 험난한 골짜기를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환온의 부하장수 하나가 골짜기를 지나다 새끼 원숭이를 하나 잡아 배에 태웠습니다. 그 때 멀리서 새끼원숭이를 되찾으러 어미 원숭이가 절벽을 타고 배를 따라왔습니다. 너무나 구슬프게 울며 따라왔기 때문에 골짜기 전체에 그 어미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퍼졌다고 합니다. 곧 강폭이 좁아지면서 배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어미 원숭이는 배에 무작정 뛰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장 그 어미 원숭이는 죽고 말았죠. 이상하게 여긴 환온 장군은 그 원숭이의 배를 가르게 합니다. 그러자 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새끼를 잃어버린 슬픔에 창자가 끊어진 거였죠.

이 이야기를 통해 단장(斷腸), 애끊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극도의 슬픔 속에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지는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애끊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오늘 마가복음 본문에 나온 한 희랍어 단어 때문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1:40-41a)

 

이 이야기는 예수님 사역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보일 겁니다. 예수님이 지나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어느 한센병 걸린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무릎을 꿇고 병을 낫게 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그 때 예수님의 첫 반응이 바로 불쌍히 여기사라고 되어 있는 이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희랍어로 splanchnistheis로 되어 있는 한 단어로 나타납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흔히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로 번역이 됩니다. 하지만 본래 이 단어의 어원대로 번역하면, 창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이라는 뜻이 됩니다. , 한센병 환자의 간청을 통해 예수님 몸의 창자들이 움직였다는 의미입니다.

창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이 어떤 느낌의 감정인지 다 아실 겁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내 창자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이 사람이 내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간단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리 간단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센병 환자는 구약 시대부터 이스라엘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만약에 이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곧바로 얼굴을 수건으로 가려야 하고 큰 소리로,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라고 외치며,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고를 줘야 합니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전염의 위험 때문이었을 겁니다. 고대근동 사회에서는 전염이 되는 한센병과 전염이 되지 않는 한센병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한센병 환자를 이렇게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시킨 거죠.

 

그런 한센병 환자가 지금 예수님 앞에 길을 막아서며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 분위기로 봤을 때는 돌을 던져서라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예수님만은 그를 다르게 보신 겁니다. 그가 무릎꿇고 병이 낫기를 원한다고 간청했을 때, 예수님의 창자들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애끊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신 거죠. 예수님에게 그 한센병 환자는 더 이상 기피되고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지금까지 당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예수님께서는 끌어안고 새로이 일으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를 치료하는 예수님의 방식이 다른 때와 달랐습니다. 한센병 환자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셨던 겁니다. 바로,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신 겁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가끔 시간이 걸리곤 했는데, 이 사람은 곧바로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만진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 나는 부정하다!라고 외쳐야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창자들이 움직였기에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것은 2000년 전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또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또 육체에 어떤 병이 있든지, 예수님께 무릎꿇고 간청하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창자를 움직이는 역사가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로 인해 시작되기를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에게 있어 예수님께 무릎꿇고, 간절히 청하고 싶은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

 

내가 무슨 고민을 가지고 있든, 주님을 찾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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