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8-14 (개역성경)

 

2: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말씀]

 

어릴 때 지금 같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교회에서는 성경암송대회가 열리곤 했습니다. 주로 외워야 했던 구절이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2:8-14 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 당시 버전이었던 개역성경으로 소개를 합니다.

 

그 당시엔 어렸을 때라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습니다. 그 지경에라는 말도 어려웠고요, 강보라는 말도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표적이라든지 홀연히, 허다한 같은 단어도 어린 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의 장점은 무조건 외울 수 있다는 거죠. 그냥 뜻을 모르고 다 외웠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이 단어들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지경에라는 말은 마리아와 요셉이 아이를 낳았던 그 베들레헴 성읍 근처에 라는 말이었고요, 홀연히라는 말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라는 뜻이었습니다. 이제는 단어에 있어서 모르는 내용은 없어지게 되었죠.

 

하지만 우리들에게 성경이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어 뜻을 몰라서가 아니죠? 그 내용을 문자적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이 우리의 현실과 상반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집니다.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문장 중 하나가, 제게는 오늘 말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2:14)

 

특별히 올 한 해 우리는 정말로 힘든 시간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고통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 평화가 된다는 이 말씀이 제게는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올해 뿐만이 아니죠? 우리가 살면서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게 느껴졌던 순간보다는, 아픔과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 보입니다. 올해만 해도 미국의 사망자 숫자는 총 3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년 대비 15%나 증가한 숫자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죠.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이 벌써 미국에 33만 명이 넘었습니다. 우리가 숫자로만 봐서 그렇지, 숫자들 하나하나가 모두가 깊은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살았던 한 사람의 인생입니다. 그들로 인해 함께 슬퍼하고 고통을 나누는 유가족들과 친구들의 고통까지 생각할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진정한 평화는 여전히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들에게,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주님의 그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가 온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고통받는 시대와 동떨어진 듯 느껴지는 이 천사들의 노래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제가 따로 답하진 않겠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오늘 하루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하늘(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이 되고 이 땅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된다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한 번 묵상하시기 원합니다.

 

제가 대답하지 않는 대신에, 제가 의역한 존 웨슬리의 설교 한 부분을 발췌해서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우리의 힘든 삶에 다가오는 평화를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영혼 속의 어두움(darkness)과 중압감(heaviness)은 그 차이가 무척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깊이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이 둘의 차이를 종종 혼동하곤 합니다. 어두움 또는 황폐된 영혼의 상태는 성령에 의한 기쁨을 완전하게 상실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중압감은 그렇지가 않죠. 중압감 가운데서도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분히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의 평화를 잃어버리지만, 영혼의 중압감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중압감 속에 있음으로 인해 ‘은혜 뿐만 아니라 평화가 넘쳐 흐르기 때문입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랑이 점점 냉랭하게 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압감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유지되거나 오히려 날로 증가하게 되죠.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은 믿음 자체를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겠지만, 믿음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과 그 증거를 확신하는 것은 영혼의 어두움 속에 있으면 예전만큼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당연히 영혼의 어두움 속에 빠지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중압감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음에도 하나님께 대한 분명하고도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그 사랑의 영속적인 증거를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두움과 구별되는 괴로운 시간들로 인해,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되는 우리의 모습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영어 원문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s://threader.app/thread/1146394038595141633

 

 

 [묵상]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평화가 넘쳐남을 믿으십니까?

 

 

[기도]

 

우리의 삶 속에, 그리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넘쳐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그 영광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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