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9-14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

 

저는 본래 목회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대학 때부터 신학공부를 했었지만, 워낙 좋은 목사님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저까지 교회현장 와서 목회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거죠. 제가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은 것은, 한국에서가 아니라 미국에서였습니다. 미국 어디나 그렇지만, 제가 처음 미국에서 살았던 동부지역에는,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는 한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일하는 시간을 쪼개 애써 교회예배에 참석하는데, 그 예배에서 제대로 된 위로와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그러한 한인분들과 성경에 등장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에 나온 이민자들 이야기를 주제로 성경공부를 한 번 인도했습니다. 그 때문에 성경을 다시 들여다 봤는데, 제가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이민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모든 주요 인물들이 다 이민자였고, 출애굽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바빌론으로 끌려 갔던 포로들까지도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신약시대도 다르지 않죠. 신약시대에는 워낙 급박하게 도시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인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바울이 전도하기 위해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교회를 만든 사람들 중에 이민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떨까요? 예수님도 이민자입니다. 태어나자마자 헤롯왕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가서 살아야 했고,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와 새롭게 정착했던 과정 또한 이민자 자녀가 전형적으로 겪는 경험이었던 거죠.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은 어느 한 군데에서 안정된 목회를 하신 게 아니죠.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밖에 없는 전형적인 이민자들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것과는 다른, 근본적인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나고 있는 거죠.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1:9-11)

 

예수님은 참 빛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 빛 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복음서도 마찬가지지만, 요한복음은 유독 예수님의 출신과 기원을 이 땅에 두지 않고 하늘에 놓습니다. ,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으로 (1:1-2),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을 통해 창조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실 하늘에 고향을 두신 분인데, 이 땅에 구원의 빛을 비춰주기 위해 고향을 떠나 우리에게 오신 분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 오신 낯선 이민자였던 거죠.

 

저는 어느 곳이든, 그곳을 새롭게 구원하는 사람들은 늘 이민자들이라고 믿습니다. 그 땅에서만 태어나 그곳에서만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어떻게 새롭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애꿎은 이민자들만 비난하며, 그 낯선 사람들 때문에 자신들의 사회가 고통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죠? 오직 외부의 눈을 가지고 그곳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줄 아는 사람만이 그 땅을 새롭게 구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민자들이 그 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가 배운 역사는, 어느 나라든 변혁과 개혁은 항상 이민자들을 통해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미국이 대표적이죠. 사실 미국의 진정한 힘은,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 다양한 관점과 문화들을 흡수함으로 인해, 전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억압했던 시대에는, 오히려 미국의 국력과 경제력이 떨어졌던 거죠.

 

저는 이러한 공식이 이 세계의 구원과도 맞물려 있다고 믿습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우리 인간은 스스로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고향인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구원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죠? 예수님께서 이 땅의 이민자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구원의 소망을 이어갈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민자로서 이 땅에서 위축되고 억눌린 삶을 살았지만, 오히려 이민자는 이 땅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존재인 거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 땅에 이민자로 오신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더 묵상하며, 예수님을 따라 이 땅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참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여러분들은 이민자로서 이곳 미국사회를 바라보며 어떤 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민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이 땅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습니까?

 

 

 [기도]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더욱 묵상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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