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히브리서 10:23-25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말씀]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소크라테스의 대화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아주 오래된 책이었는데, 예전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성경처럼 세로로 읽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플라톤으로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에 그의 제자들과 나눴던 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익숙해서 그렇지, 이 책도 성경만큼이나 오래 된 기록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에 살았으니까, 그 책의 대화도 2400년 전에 이뤄졌던 대화죠.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그 대화 중에 이솝(Aesop)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솝우화 하나를 인용한 거죠. 그 때 저는 무척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 아무렇지 않게 읽었던 이솝우화가 소크라테스보다 훨씬 더 오래 전 기록이었으니 말이죠. 그는 소크라테스보다도 100-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으로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소크라테스의 대화에도 끼어 있었던 겁니다. 이솝우화를 처음 읽으면 대개 고개가 끄덕여지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솝우화의 이야기들이, 어른이 된 나의 삶 속에서 다시 회상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과 비슷한 상황들이 내 현실 속에서 나타남으로 인해, 오래 전에 읽었던 이솝의 이야기들이 다시 내 머리 속에서 재생되는 거죠.

최근에 다시 떠오른 오래 전 이솝우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들어본 이야기인지 한 번 나눠보겠습니다. 제목은 네 마리의 황소와 사자 입니다.

 

네 마리의 황소가 있었습니다. 이 넷은 너무나 친한 우정을 가졌기에 언제나 함께 다녔습니다. 풀을 뜯어 먹을 때도 함께 먹고 쉴 때도 함께 쉬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위험이 그들에게 다가와도 그들은 무엇이든 힘을 합쳐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네 마리 황소를 멀리서 바라보는 사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자는 황소를 잡아먹고 싶었지만, 네 마리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었기에 멀리서 군침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는 꾀를 하나 부렸습니다. 소들이 풀을 뜯고 있을 때 살금살금 한 마리에게 접근해서, 다른 소리들이 너의 흉을 보고 있다고 말해준 겁니다. 사자는 네 마리의 황소 모두에게 따로따로 접근해서 그렇게 이간질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자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황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를 조금씩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주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황소 간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이 싸움으로 네 마리의 황소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자는 좋아하며 한 마리씩 잡아먹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들어보신 이야기인가요? 어릴 때 읽을 때는 사자 앞에서 함께 협력해야 하는데 말다툼을 했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헤어지는 이 황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이런 어리석은 황소들의 모습이 내 현실 속에서 간간히 나타나고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함께 협력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상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 사람과는 더 이상 협력하지 않기로 맘 먹게 됩니다. 머리로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막을 순 없습니다. 그리고 사자한테 각각 잡아 먹히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거죠.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내가 망하더라도 너 잘 되는 꼴은 못 보겠다 라고 말하며, 마땅히 협력해야 될 사람과 등을 진 적이 있진 않습니까? 어릴 때 이솝우화를 읽을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살다 보니 화가 많이 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 감정을 이성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어쩌면 지혜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지식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화가 나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담담히 내 이성에게 모든 결정권을 넘길 줄 아는 사람이냐 그렇지 못한 사람이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화를 못 이겨서 내 인생을 망치는 사람은 아무리 지식이 많고 손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하더라도, 결코 좋은 인생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0:24-25)

 

여기서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는 알 순 없어도, 우리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살면서 많이 만나봤습니다. 주로 부정적인 사람들이죠. 뭔가 일 하나를 같이 하자고 해도,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나에게 수 십 가지로 얘기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따로 대안을 가지고 있지도 않죠. 그저 안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 신앙은 이와 정반대여야 합니다. 신앙은 함께 떠나는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익숙한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나를 변화시켜서 나로 계속 모험을 떠나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라고 하는 오늘의 말씀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주저 앉으라는 충고가 아니라, 함께 신앙의 모험을 떠나자고 하는 응원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 모험의 목적지는 바로 사랑과 선행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기며 사는 삶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당연히 내가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또 내가 상처 입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신앙의 모험을 멈출 수 없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계속 협력하고 함께 사랑과 선을 이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이제 반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감염을 막기 위한 물리적인 거리를 뜻하죠. 물리적인 거리는 벌려야 하되, 우리의 영적 관계의 거리는 다시 좁혀야 합니다. 사랑과 선행으로 함께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다시 일어서는 교회를 여러분과 함께 세우기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이 네 마리의 황소 중 하나라고 하면, 사자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자의 이간질을 막을 수 있을까요?

 

 

[기도]

 

내가 믿는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사랑과 선행이 내 삶 속에 습관처럼 자리잡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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