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후서 13:13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말씀]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카네기 연구소에서 한 유명 공대의 졸업생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성공비결을 물었습니다. ,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사회에 나가 성공을 했다면 그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그들의 천재적인 능력과 좋은 대학에서 익힌 지식들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창의적인 재능과 지식은 성공을 위해 오직 15%만이 쓸모 있었고, 나머지 85%는 다른 것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대답했습니다. 85%의 성공비결이 뭐였을까요?

 

빌 게이츠는 하버드를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이 쓸모 없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판단은 적절했습니다. 그는 동료인 폴 앨머와 스티브 발머와 함께 의기투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라고 하는 조그마한 컴퓨터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빌 게이츠의 성공 비결을 컴퓨터가 각 가정에 보급되는 시기에 적절하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평가가 틀렸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설명이 되진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빌 게이츠를 모델 삼아 다양한 회사를 창업하며 도전하고 있지만, 실제 성공까지 이어진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뭐였을까요?

당시 전 세계 최대 컴퓨터 기업은 IBM이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그의 나이 스무 살에 이 IBM과 첫 계약을 맺습니다. IBM 입장에서는, 빌 게이츠가 아무리 좋은 사업제안을 했다고 하더라도 고작 스무 살의 하버드 중퇴생에게 그런 커다란 사업을 제휴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업제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빌 게이츠의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빌 게이츠의 어머니는 자선단체 활동을 통해 유명 기업인들과 인맥이 닿아 있었는데, 당시 IBM 사장이었던 존 오펠과도 이미 알고 지냈던 사이였던 겁니다. 결국 빌 게이츠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IBM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거죠. 빌 게이츠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업자인 폴 앨머와 스티브 발머도 그들이 가진 모든 인맥을 사용해서 관련 기업들과 제휴를 맺었고, 결국 마이크로스포트를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이 버는 회사로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 성공을 위해 뭔가 숨겨진 비결이 있을 줄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만, 성공한 젊은 창업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빌 게이츠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모두 인맥을 통해 성공했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 카네기 연구소에서 말한 공대 출신의 성공한 사람들이 그들의 성공의 비결로 얘기한 85%가 바로 인맥입니다. 아무리 좋은 창업 아이템이 있고 그것을 뒷받침할 초기자본이 있어도, 인맥이 없으면 복잡한 수많은 행정업무들을 힘들게 처리하느라고 진을 빼야 하고, 막상 팔 물건이 만들어져도 그것을 제대로 시장에 내놓기까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진되기 때문입니다. 인맥, 즉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해야 사업도 쉬워지고 그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저도 군대에서 장교로 있을 때 많이 경험했습니다. 다른 부서와 업무 협조를 하려면 문서를 만들어서 그 부서에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문서만 딱 보내면 대부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일이 다가와도 문서에 나온 대로 협조해 주는 부서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일이 진행될까요?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업무의 경중에 따라 전화로 협조를 구해야 될 일이 있고, 직접 찾아가서 부탁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찾아가서 그냥 그 부서 담당자와 잠깐 얘기하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면, 그 다음부터는 일이 착착 진행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문서로 업무를 주고받는 관계라 할지라도, 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인간관계가 잘 다져져 있으면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쉽게 해결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관계가 가져온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비리나 잘못을 저질러도 인간관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잘 아는 경찰이나 변호사 하나만 알아도 마음이 든든하죠? 그러면 지인 중에 검사나 판사가 있으면 얼마나 더 든든하겠습니까?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도 충분히 덮을 수 있다는 엉뚱한 자만감이 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거죠.

세상의 관계는 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맺는 관계는 그 기저에 서로 간의 이득이라고 하는 기본원리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지어도 내가 그 죗값을 받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득이 된다고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지켜줍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내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내가 조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내 억울함을 푸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세상 사람들에겐 내 힘든 처지나 억울한 상황이 그저 남의 일이 돼버립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맥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강력하고 든든한 것은 맞지만, 어떨 때는 지푸라기가 풀어지듯이 너무나 허무하게 끊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 간의 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세상에서의 관계가 그대로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내게 이익이 되면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내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냥 끊어버리는 그런 세상의 관계가 교인들 간에도 나타나곤 하는 거죠. 당연히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관계는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마지막 구절의 말씀과 같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목사님들이 예배 마지막에 축도할 때 늘 사용되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착하고 말 잘 듣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게 아니죠? 죄 짓고 타락해서 세상에선 정말 구제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우리들이, 구원을 기대하고 희망을 갖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때문이죠.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댓가를 기대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교통(fellowship)하심이 우리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세상과 같이 이해관계로 인간관계를 맺으라는 의미가 아닐 겁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위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희생하고 헌신하며 그 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하라는 명령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내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내치고, 도움이 되면 유지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내가 져주고 손해보더라도 내 사랑과 헌신을 통해 예수님의 뜻을 관철시키라는 겁니다. 쉽진 않습니다. 예수님도 고민하고 번민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분이 손해보고 희생하는 그 마음과 노력을 통해, 누군가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변화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의 이해관계에 따라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나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내 관계 안에서 내 삶을 통해 나타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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