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열왕기하 22:8-13

 

22:8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22:9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22:10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22: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22: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2: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말씀]

 

한 부자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당했습니다. 강도는 그 부자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킨 후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갔습니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근처에 있던 한 청년을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그 청년은 전과도 있었고 그 범행시간의 알리바이를 정확하게 대지 못했기 때문에, 경찰은 이 청년이 강도를 저질렀다고 확신했습니다. 운 나쁘게도 그 부자는 그 날 얻어맞은 머리의 상처가 원인이 되어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재판은 강도치사 사건에서 살인강도 사건으로 바뀌었고, 그 청년은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청년은 반박할 여지도 없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얼마 후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 그 살인강도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중년남성이 강도짓을 하다가 붙잡혔고, 경찰에게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여죄들까지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여러 죄들을 고백했는데, 그 과정에서 15년 전 그 부자를 상대로 했던 살인강도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건을 맡고 있는 경찰이 하필이면 과거 그 살인강도 사건을 담당했던 그 경찰이었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마지막으로 경찰서장으로 취임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만약에 자신이 담당했던 15년 전의 사건이 과거 자신의 잘못된 수사로 밝혀진다면 그는 꿈에 그리던 서장자리를 놓치게 되고 오히려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결국 그 경찰은 이 남성의 여러 자백 중에 15년 전의 그 살인강도 사건을 누락시켰고, 얼마 후 경찰서장에 취임할 수 있었습니다.

 

들어본 적이 있는 얘기죠? 실제로 있었던 얘깁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할 때, 진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그 과거의 일들을 조작하고 재구성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살짝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뇌는 참 편리하죠.

그런데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내 머리속에 짜놓은 과거의 기억들이 진짜 사실과 마주치게 되면 인지부조화라고 하는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인지부조화라는 것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실제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기합리화에 빠져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즉 진실마저도 무시하고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옳다고 우기는 거죠. 이 이야기 속의 경찰도, 15년 전 죄 없는 억울한 청년을 살인죄로 누명을 씌워서 사형시켰다는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는 그 진실이 틀리고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고 스스로 자기 암시를 걸었을 것입니다.

 

‘이 자가 횡설수설하며 한 말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어.

15년 전이나 지난 일이고, 자신이 죽였다는 것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데 내가 맡았던 그 사건과 동일한 사건인지도 확신할 수 없잖아.

 

물론 자기합리화는 필요합니다.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행동들이 옳다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는 것은, 나의 뇌를 정상적으로 운용하려는 자기방어의 일종입니다. 반대로 자기합리화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과거를 마주할 때마다 늘 죄책감에 사로잡히며 쉽게 우울증에 빠지곤 합니다. 시간이 지났으면 어느 정도는 잊어버리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거죠.

그럼에도 이 경찰이 했던 자기합리화는, 이러한 자기방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무고하게 죽은 한 청년의 안타까운 생명을 생각한다면, 그 당시 담당 경찰로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보신만 신경쓰는 그의 태도는, 이미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가치를 상실하게 된 거죠.

 

이야기가 좀 무거웠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이야기도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열왕기하 22장에는 성전에서 급작스럽게 발견된 율법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당시 왕은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낡은 솔로몬 성전을 보수하던 중에, 한 대제사장이 그동안 성전의 구석에 감춰져 있었던 율법책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율법책의 내용이 모세 오경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 중의 일부분을 말하는 건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이 발견된 율법책을 차근차근 경청하던 요시야 왕이 갑자기 옷을 찢고 슬퍼했다는 겁니다. 이 당시 요시야 왕의 나이는 스물 여섯 살로, 그는 비교적 어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다스리는 유대 왕국의 현실이 율법책에 기록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비통한 마음에 옷을 찢은 겁니다.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의 명령을 유대 백성들이 준행하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요시야 왕이 대단한 것은, 그 후에 이 율법책의 내용에 따라 이스라엘 역사에 전무후무한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우상들을 철폐하고 율법의 말씀에 따르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거죠. 앞서 언급했던 경찰과 비교하면, 요시야 왕의 태도는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율법의 내용이,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었지만, 요시야는 과감하게 현재의 잘못을 버리고 과거의 과오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갔던 겁니다.

 

 

[묵상]

 

이제 여러분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들어 알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의 삶과 지금 여러분의 삶이 동일하게 느껴지십니까? 저도 마찬가지지만, 아마 여러분 대부분은 지금 내 삶이 참 그리스도인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떨구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내 현실 때문에 그렇게 말씀대로 살기 힘들다고 항변하고 내 삶이 최선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묻고 싶습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타협하며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마음을 찢으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참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기도]

 

 

내 현실이 녹록치 않다 하더라도, 내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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