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7:5-11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37: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37: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37: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말씀]

 

빌리어네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억만장자라고 번역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1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부자를 뜻하죠. 예전에 돈의 가치가 지금보다 높을 때는 밀리어네어(백만장자)만 되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부자라고 여겨졌는데, 지금은 이 근처 좋은 집만 해도 수 백만 달러가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죠. 그래서 그보다 상위 단위인 빌리어네어가 이제는 큰 부자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빌리어네어의 숫자도 전 세계에 아직 2500명이 안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로 빌리어네어가 된 사람은 누굴까요? 록펠러나 카네기, J. P. 모건 같은 사람을 떠올리실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살아있을 때까지는 빌리어네어가 되진 못했습니다. 살아있을 때 빌리어네어가 된 첫 번째 인물은 자동차왕 헨리 포드입니다. 가솔린 엔진으로 자동차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칼 벤츠입니다. 오늘날 벤츠 회사의 창업주죠. 그런데 헨리 포드는 자동차에 대한 다른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땅이 넓은 곳에 사는 미국인들이 누구나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가격을 낮추고 성능을 개량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컨베이너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라인을 갖춰서 저가의 성능 좋은 T-Ford(사진)라는 자동차를 대량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이 차는 1500만 대가 팔려 미국 전역에 자동차를 보급하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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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포드가 가솔린으로 자동차를 만들려고 할 때 그의 친구 하나가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격려를 해줬습니다. 사실 포드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친구의 격려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누구보다도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면에 전문가였거든요. 이 친구가 바로 토머스 에디슨입니다 (사진의 왼쪽이 포드, 오른쪽이 에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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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는 훗날 에디슨의 격려를 두고두고 기억하며 회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솔린 자동차로 전 미국에 자동차를 팔겠다는 꿈을 꿨을 때, 아내를 제외하고 에디슨은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격려해 준 사람이었거든요.

 

성경에서 에 관한 이야기 하면 항상 요셉이 언급됩니다. 그의 인생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것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요셉이 꾸었던 꿈은 어릴 때 형제들의 곡식단이 그의 단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37). 그는 이 때까지만 해도 철없는 어린애였던 것 같습니다.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었고, 괜히 형들에게 얘기했다가 미움만 샀으니까요. 두 번째 꾼 꿈도 비슷한 꿈이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그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전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을 까먹었었는지 형들에게 또 다시 얘기했다가 혼이 납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도 얘기했는데 마찬가지로 혼이 납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이 모두 그에게 절할 것이라는 불효를 상징하는 꿈이었기 때문이죠. 아버지 야곱은 혼을 내긴 했지만 그 꿈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37:11).

이쯤 되니 요셉은 꿈을 함부로 남에게 얘기하기 힘들어졌을 겁니다. 꿈 내용을 골라서 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꿈 얘기를 했다가 그 내용으로 인해 남에게 미움을 샀기 때문이죠. 이것은 요셉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나의 꿈을 얘기해도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듣고 싶지 않은 충고를 합니다. 그 때문에 내 꿈 얘기를 함부로 하기가 어려워지죠. 그래서일까요? 언제부터인가 내 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남에게 얘기하기도 힘들어졌을 뿐 아니라, 내 자신조차 내 꿈을 잊어버리게 된 거죠.

마지막 야곱에 대한 구절이 아쉽게 맴돕니다. 야곱은 자기의 꿈을 천진난만하게 밝히고 있는 요셉을 혼냈습니다.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아들이 그런 큰 꿈을 꾼 것이 대견했겠지만, 어머니를 잃고 무서운 이복 형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괜히 형들에게 미움을 살까봐 그랬던 거겠죠. 그러면서도 요셉의 그 꿈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고 묘사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아쉽습니다. 혼을 내면서도 따로 요셉의 그 꿈을 격려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죠. 다 아시다시피 요셉은 이후에 형들에게 팔리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연속된 불행을 겪습니다. 이 과정은 참으로 외로웠을 겁니다. 혹시라도 자신의 꿈을 격려했던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추가되었다면 요셉의 삶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요?

저는 우리 교우분들이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제는 없다고, 지금 현실이 녹록치 않다고 꿈을 저버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꿈이라고 하는 것은 내 현실이 가장 각박한 순간에 더욱 더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쉽지 않은 삶 속에서도 여러분이 스스로의 꿈을 간직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각자의 꿈들을 격려해 주기 원합니다. 포드의 꿈을 격려해준 에디슨의 말 한 마디가 포드를 자동차 왕으로 만들었듯이, 여러분의 작은 격려가 누군가를 꿈을 이루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겁니다.

 

 

 [묵상]

 

여러분들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충분히 다른 사람의 꿈을 격려하고 있나요?

 

 

[기도]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과 내 꿈이 동일하기 원합니다. 내 꿈이 주님 안에서, 그리고 나를 격려해 주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망 안에서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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