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베소서 2:12-18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3: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3: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은 해발 3,832미터의 안데스 산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국경을 둘러싸고 분쟁이 끊이지 않던 곳입니다. 두 카톨릭 국가가 분쟁과 갈등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당시 교황은 이 두 나라에 친서를 보내, 서로 간에 평화와 협력을 이룰 것을 촉구합니다. 그럼에도 이 두 나라 간의 갈등은 더 심해졌고, 급기야 무력으로 충돌할 조짐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당시 아르헨티나의 주교였던 산 후앙 쿠요 주교는 두 나라를 설득하여, 두 나라 사이의 국경에 평화를 상징하는 예수상을 건립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두 나라는, 당시 유명한 조각가 마테오 알론소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카톨릭 학교에 세워졌던 7미터짜리 청동 예수상을 이곳 국경인 안데스 산맥으로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쉽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상은 기차로 1200킬로미터를 이동한 후 노새를 통해 산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마침내 1904313, 3000 여명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민들, 그리고 양 국가의 대표 및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예수상의 건립을 축하하는 행사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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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까지만 해도 좋았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국이 전쟁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었는데 함께 모여 평화의 상징인 예수님의 동상을 세웠으니, 양 국가 간의 갈등도 수그러드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 예수상의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이 예수상이 바라보는 쪽이 아르헨티나였고, 칠레 쪽으로는 등을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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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칠레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예수상의 위치가, 마치 예수님이 손을 들어 아르헨티나만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였습니다. 다시 두 나라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다시 예전처럼 분쟁과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갈등을 무마시킨 아주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칠레의 한 신문기자가 사설에서 예수상의 위치에 대해 이렇게 썼던 것이 칠레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겁니다.

 

예수상이 아르헨티나를 향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칠레보다) 그 나라가 더 예수님의 돌보심이 필요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재치있는 사설로 칠레인들의 분노는 한 순간에 사그라들었고, 양 국가의 평화는 다시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평화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 3장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힘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바울서신이 강조하는 내면적인 믿음과는 달리 실천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누군가가 똑똑하고 총명한 머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의 입으로 표현되는 언어가 온유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똑똑함은 올바른 하나님의 지혜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13-15). 오직 하나님의 지혜는 화평과 의로움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17-18).

살다 보면, 참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인 것 같은데,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입히고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아 보여서 내심 의지하고 있었는데, 그 나오는 말과 행동들이 내 마음에 가시처럼 뾰죽하게 박혀서, 오히려 내게 상처를 주고 나를 멀어지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말로 헛똑똑이라고 하죠? 세상 일은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사람들이 그를 기피하곤 합니다.

오늘 야고보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런 헛똑똑이처럼 살지 말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평화와 긍휼의 선한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참 실감이 납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언어로 내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할 정도로, 내 마음이 연약하다는 것을 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언어는, 갈등과 상처보다는 평화와 위로를 가져와야 합니다. 한 마디의 말로 두 나라의 분쟁을 막았던 신문기자의 한 마디 사설처럼, 우리의 언행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화평케 하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말과 행동을 통해, 여러분과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나누는 화평케 하는 자들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묵상]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 중에 여러분의 입이나 표정에서 고운 말이 잘 안 나가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 상처를 받지도 않고 내가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기도]

 

주님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사,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과 위로를 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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