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무엘상 3:4-10

 

3: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3: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3: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3: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3: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3: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말씀]

 

제가 예전에 신혼 때 아내와 함께 서울역에 있는 유명한 찜질방에 찾아가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에 워낙 좋은 찜질방이 많이 들어섰지만, 그때만 해도 시설 좋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찜질방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서울역에 새로 지어진 그 찜질방은 늘 사람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찜질을 하다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잠을 자기 위해 아내와 함께 찜질방 매트바닥에 누웠습니다. 그 때 근처에 있는 중년 여성들이 수다 떠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내용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정확하게 7명이 둘러 앉아서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7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겁니다. 의아해서 그쪽을 바라보니, 7명 중에서 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모두 다 동시에 자기 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듣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모두 누군가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거겠죠.

 

저는 서울역 찜질방에서 잠결에 목격했던 이 날의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기도하는 방식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그 찜질방의 여성들처럼 일방적으로 내 목소리만을 내는 것에 더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 대화는 마치 친구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33:11)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항상 내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을 잘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이 하나님을 향해 뭔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대부분의 문장은 -주시옵소서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라는 것은, 말하는 화자(話者)와 듣는 청자(聽者)의 역할을 서로 번갈아가면서 나누는 것이죠. 기도가 나와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듣든 말든 내 위시리스트를 쭉 나열하는게 올바른 기도가 될 순 없습니다. 물론 그런 기도조차,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렇게 일방적인 요구를 나열하는 기도라도 시작해 보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위해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말하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점차 옮겨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3장은 사무엘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밤에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그 음성이 엘리 제사장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갑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되자,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을 부르는 이 목소리의 정체가 하나님의 음성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다시 한 번 그 음성이 들리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니,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하도록 가르쳐 줍니다. 성경을 좀 읽어보신 분들은 엘리 제사장이 그다지 유능하지도 않고 어리석고 비둔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하실 겁니다. 그럼에도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에게 가르쳐 준 이 대답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우리의 기도는 너무 일방적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필요한 말만 잔뜩 늘어놓고 나서 내가 열심히 기도하며 산다고 착각해선 안 되겠죠. 기도는 대화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말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묵상]

 

혹시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제대로 응답받지 못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한 적이 있으시죠?

 

그럴 때 이렇게 기도하시고 가만히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시기 원합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기도]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구별하여 듣고, 그 말씀을 내 삶으로 경청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귀와 우리의 영혼을 열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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