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0일 - 팔복(八福)

2020.07.19 22:56

이상현목사 조회 수:166

[본문]

 

마태복음 5:3-10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말씀]

 

오늘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 여덟 가지의 복, 팔복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산에 올라가 앉으시고 제자들에게 이 여덟 가지의 복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들을 이라 부른 이유는 각 구절마다 복이 있다 (Blessed are) 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여덟 개나 되지만 한 가지씩 확인해 보기를 원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이해보다는, 의구스러움을 더 늘려보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히 심령이라는 단어가 붙어있기 때문에 내가 가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애써 무시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누가복음에선 심령이란 말이 없습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6:20)

 

2) 애통하는 자: 말 그대로 슬퍼하는 자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3) 온유한 자: 가난하거나 애통하는 자보다는 좀 더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악한 시대에 정말 온유한 사람이 대접받고 복을 누리고 있나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늘 손해보며 살기 때문입니다.

 

4)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주림목마름이라는 단어가 이미 결핍과 부족을 나타냅니다. 모자른 상태가 어떻게 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악한 세상은 ()를 싫어합니다. 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늘 핍박과 불합리를 겪어야 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5)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이라는 말은 자비를 뜻합니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마음이죠.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잘 베풀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긍휼의 마음을 품기보다는 그가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느냐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맑은 호수처럼 그 안에 불순물이나 찌꺼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런 맑은 호수를 바라볼 때 그 호수의 맑음보다는, 더러움에 찌든 내 자신이 더 잘 보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청결한 마음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내 자신은 그렇게 깨끗하게 살 수 없기 때문이겠죠. 과연 이 악한 세상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을까요?

 

7) 화평케 하는 자: 평화를 가져오는 자는 전쟁과 갈등의 시대에 메시야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늘 전쟁과 갈등으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maker)은 항상 목숨을 걸고 활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이것은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보다 더 실질적인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보셨듯이, 가난, 애통, 온유, , 긍휼, 마음의 청결, 화평, 박해의 여덟 가지 복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갖고 싶어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피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팔복, 여덟 가지의 복이 아니라, 팔재(八災), 여덟 가지의 재난으로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재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들은 복이 있다 (You are blessed)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은,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그래도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예수님 말씀대로, 이들이 정말로 복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걸까요?

 

이 혼란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한 번 더 말씀을 찬찬히 읽어야 합니다. 팔복이 나열되는 이 구절에는 또 다른 키워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처음과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천국이 그 키워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이 말씀이 약속하는 여덟 가지의 복은 이 세상에 속한 복이 아닙니다. 천국의 복입니다. 천국의 복이라고 해서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받는 보상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미리 경험할 수 있는 복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천국에서 받을 복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볼 수 있는 선취(先取)의 복입니다. 이 선취가 이뤄지는 대표적인 장소가 교회이고, 대표적인 시간이 예배입니다. 교회는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죠? 교회는 사랑과 섬김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방식을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와 예배를 통해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교우들과 함께 미리 맛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라고 합니다. 종말론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어렵다고 생각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종말, 즉 세상 끝에 하늘나라에서 맛볼 모든 영광과 기쁨을 함께 미리 맛보는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교회와 예배는, 단지 지금만의 경험이 아니라,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경험할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는 그 순간을 미리 땡겨서 경험하는 귀한 시간입니다. 단지 건물로서의 교회와, 주일에 드리는 예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중에, 혹은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그 순간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천국의 복은 우리의 것이 됩니다.

혹시라도 뭔가가 부족해서, 또 슬픔과 박해로 인하여 고통받는 분이 계십니까? 혹은 온유하고 의로운 마음 때문에, 남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평화를 이루려는 마음에 세상으로부터 오히려 미움 받고 상처를 받으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천국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함께 언젠가 천국에서 맛볼 그 놀라운 경험들을 미리 맛보며,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교회생활이 여러분의 삶 속에 나타나기를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묵상]

 

“여러분은 천국의 복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복을 쫓아가고 있습니까?

 

 

[기도]

 

지금 내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의 복이 진정 나에게 있음을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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