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6일 - 수요예배를 대신하는 묵상 말씀 "하나님의 보복의 날"
2021.10.05 12:14
[본문]
이사야 61:1-3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
8년 전에 미국의 어느 24시간 가게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새벽 4시에 한 남자가 들어와 음료수 하나를 집어 계산대 앞에 놓았습니다. 하지만 계산을 하려던 남자는 돈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돈이 한 푼도 없었기 때문이죠. 측은한 마음에 가게 직원은 자신의 돈으로 이 남자의 음료수 값을 대신 내줬습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둘은 악수를 나눴고 새벽의 손님은 음료수를 들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손님은 다른 세 명의 남자와 함께 가게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었죠. 그리고 가게 안을 다 때려 부수며 계산대 돈을 모두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손님이 강도로 돌변한 거죠. 심지어 그는 불과 몇 분 전에 자신에게 음료수를 사줬던 그 점원까지 방망이로 때리고 나서, 계산대 서랍의 돈을 모두 빼앗은 채로 가게를 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거죠.
하지만 CCTV에 이들의 얼굴이 찍혔고, 곧 이 강도들은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측은한 마음에 음료수를 사줬던 그 점원은 어느 인터뷰에서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 강도들은 평생 감옥에 갇혀야 합니다. 저런 사람들은 밖에 나돌아다닐 권리가 없어요.”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것을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히죠. 이렇게 은혜가 원수로 돌아오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관용어들이 있습니다. “배은망덕(背恩忘德)”이나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도 있고,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짐승들은 은혜를 베풀면 사람에게 은혜로 갚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빗대어서 얘기하는 말들입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스스로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악한 존재임을 알았기에 각자의 양심에 호소하기보다는 사회의 법과 규례를 강제함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했던 거죠.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이나 고조선의 8조법(八條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원수는 원수로 갚아야 한다”는 논리죠. 당연히 오늘날의 법도 같은 논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은혜로 갚아야지, 원수로 갚지 못하게 하겠다는 사회제도적 장치인 거죠. 그럼에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쉽게 들려오곤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동해보복의 원리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 것이 당연한 세상인데, 성경은 ‘원수를 은혜로 갚는 분’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은혜로 갚는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도리어 우리에게 은혜로 갚아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그가 짊어진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은 구원이라고 하는 큰 은혜를 얻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은 탐욕스러운 인간의 보복 방식이지만, 정 반대로 원수를 은혜로 갚는 것! 이것이야말로 선하신 하나님의 보복 방식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이사야 61장은 이처럼 원수를 은혜로 갚는 하나님의 보복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원한이 하나님의 선한 보복으로 인해 은혜로 바뀌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슬픔과 상처는 기쁨과 위로로 역전됩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사 61:1)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사 61:3)
하나님이 원수를 은혜로 갚아주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겪는 그 모든 악한 상황들이 거꾸로 역전되는 거죠. 상한 자들이 고침을 받고, 묶인 자들이 자유로워지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근심이 찬송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이 은혜의 날을 역설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한다” (사 61:2)
이 은혜의 날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보복하시는 날입니다. 우리 인간이 만드는 보복의 날은 원수를 원수로 갚는 날이지만, 하나님의 보복의 날은 원수를 은혜로 역전시키는 기쁨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로운 보복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통해 또 다시 선포됩니다. 그것이 바로 산상수혼의 팔복(八福)의 선언이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3-10)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의 보복까지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원수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의 원리에 따라 원수를 은혜로 갚을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원수에게 당했을 때는 속상하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었지만, 그러한 원한들을 은혜로 바꾸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매일매일이 원수를 은혜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들임을 기억하시고, 이번 한 주도 은혜로운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묵상]
여러분 스스로 원수를 은혜로 갚아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원수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원수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기도]
오늘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사 우리의 모든 원한이 은혜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