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하 26:3-5; 26:16:21

 

26:3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6:4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26:5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26:17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26:18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26:20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6: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말씀]

 

우리 역사에서 최악의 왕 혹은 최악의 황제는 누구였을까요? 우리는 주로 네로나 연산군 같은 폭군을 최악의 왕으로 기억합니다. 그가 왕의 신분을 망각한 채 저질렀던 기행과 폭정 때문이죠.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차라리 네로나 연산군 같은 폭군이면 백성과 신하들이 못 참고 재빨리 왕을 바꿀 생각이라도 하는데, 왕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시간만 질질 끌린 채 백성들의 삶만 더 피폐해진다고 합니다. 물론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겠죠. 그런데 실제로 그런 왕이 있었습니다.

 

명나라의 13대 황제인 만력제(萬曆帝)48년을 집권하며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오래 집권한 황제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최악의 황제였습니다.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중국 땅에 일으켰던 강희제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제에 대해서는 관대했지만, 그 전에 명나라를 기울게 했던 만력제에 대해서는 제사도 드려선 안된다고 말하며 그를 폄하했습니다.

 

도대체 만력제가 무슨 짓을 했던 걸까요?

 

만력제는 10살에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총명했기 때문에 명군의 자질을 충분히 보여줬었습니다. 그의 스승인 장거정은 그를 엄격하게 가르쳤고, 만력제는 황제가 되어서도 장거정을 스승으로 깍듯이 모시며 그와 함께 개혁정치를 펴 나갑니다. 그렇게 처음 10년은 현명한 군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집권 10년 즈음에 스승이었던 장거정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모함이었는지 몰라도, 장거정이 온갖 비리와 부정축재를 했다는 투서가 20살이 된 황제에게 전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만력제는 돌아가신 스승에 대해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황제에게는 청렴과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했던 스승이, 뒤로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로 인해 만력제는 큰 충격을 받았던 겁니다.

 

처음엔 불같이 화를 내며 장거정을 부관참시하고 그의 가족들까지도 죽게 만들었던 만력제는 그 다음부터 파업에 들어갑니다. 말 그대로 황제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멈추고 직무수행을 거부한 겁니다. 황제의 직무복귀를 요구하는 신하들이 뙤약볕에서 쓰러져 가는데도 황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소문 위에서 그대로 잠을 잤다고 합니다. 비만과 우울증이 겹쳐졌고 황제는 30년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라는 점점 기울어갑니다.

 

이웃 나라인 조선도 이 만력제의 파업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당시에 선조의 아들이었던 광해군은 만력제의 직무거부로 인해 세자책봉을 제 때 받지 못했고 (당시 조선의 세자 책봉은 명나라에서 형식적으로 승인을 했었습니다) 이는 광해군의 성격이 삐뚤어지게 되어 나중에 폭정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력제는 철썩같이 믿었던 스승 장거정의 죽음으로 인해 총기를 잃어버렸고, 이로 인하여 명나라는 망국의 길을 걷게 된 겁니다.

 

구약시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의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 웃시야는 16살에 즉위해서 52년을 다스렸습니다. 그 역시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그를 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선지자 스가랴의 말을 청종하였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대하 26:4-5). 아마도 어린 웃시야는 선지자 스가랴를 스승처럼 모셨던 것 같습니다. 웃시야가 스가랴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나라를 통치했기 때문에 주변 국가도 유다 왕국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웃시야는 블레셋을 정벌하여 그들의 성을 헐었고, 암몬과 애굽 변방까지 그의 명성을 떨쳤으며 (대하 26:6-8), 광야를 개척하여 온갖 농작물을 거두도록 합니다. 한 마디로 나라가 안팎으로 엄청나게 부강해진 겁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웃시야 왕은 교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려 하죠. 바로, 왕이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제사를 지내려고 한 겁니다. 예전에 사울왕도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제사를 지냈다가 퇴락의 길을 걷게 됐었죠. 웃시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사장 아사랴가 급하게 웃시야의 제사를 막으려고 했지만, 왕의 고집은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대하 26:19)

 

제사를 직접 진행하려고 했던 왕의 몸에 갑자기, 오늘날 한센병이라 불리는 나병, 즉 문둥병이 발생한 겁니다. 이 병은 부정한 병이었기 때문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여호와께서 치셨다고 기록하고 있죠 (대하 26:20).

 

성군이었던 웃시야 왕이 갑자기 교만해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습니다. 다만 스가랴 선지자가 이 때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스승으로 모셨던 스가랴 선지자가 더 이상 웃시야의 곁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만력제 때처럼,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웃시야가 돌변하게 되었다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이처럼, 늘 곁에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스승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 간직하며 더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는 않겠지만, 그 반대로 스승의 가르침을 망각하며 사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스승의 부재는 그만큼 제자들을 안 좋은 쪽으로 인도하곤 하죠.

 

우리에게 참 스승은 누구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진정한 스승이시죠.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곁에 계실 땐 어리석고 무지했지만, 오히려 스승이신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고 난 후부터는 참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함께할 때보다 그들 곁을 떠났을 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스승이셨던 거죠.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눈에 보이는 그 어떤 스승들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의 참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예수님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그 말씀대로 (28:20) 우리 곁에서 우리 마음 속에 충고와 조언을 해주시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다시 다가오는 스승의 날에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우리 모두 주님의 발자취를 걷는 참된 제자들이 다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상]

 

여러분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기도]

 

나의 참 스승이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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