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18:1-4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말씀 어린 아이처럼]

 

오늘은 55일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어린이날이죠.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만든 때가 1923년이었으니까, 우리 교우들은 모두 어린이날에 대한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처음엔 51일이었다가, 노동절과 겹치지 않기 위해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어린이날이 바뀌기도 했었죠. 그러다 1961년부터 55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고, 1975년부터 공휴일로 지키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미국 땅에 오래 사셨어도, 55일이 되면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라는 생각들을 하실 겁니다.

 

또한 항상 5월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지켜졌습니다. 어린이 주일이 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설교 본문이,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8장이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3)

 

이 말씀은 누가복음 18장에도 동일하게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누가복음에 나타나지 않는 구절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설명이죠.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18:4)

 

,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자기를 낮추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어린 아이처럼 겸손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최소한 이렇게 설교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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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의문을 가졌던 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씩은 품어봤을 질문인데요, 어린 아이가 정말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맞나요?

 

오늘날 어린이들을 보면, 어설프고 미흡하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이들이 스스로의 미숙함을 인지하여 스스로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예수님 시대에도 이런 어린 아이들의 성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어린 아이들은 뭐든 배우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아직 한 사람으로서 능숙하게 살지 못하면서도, 그 부족함을 스스로 깨달아 겸손해 할 줄도 잘 모릅니다. 이것 또한 어린 아이들의 미숙함 때문이겠죠.

 

그런데 왜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불렀던 걸까요?

 

제가 좋아하는 신학자 중에,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라는 분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대부분 들어보신 적이 없는 이름일 겁니다. 그런데 혹시 이분의 이름을 들어보신 분들은, 이분이 했던 유명한 말을 아실 수도 있습니다. 바로, 종교를 절대 의존의 감정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이라고 정의한 겁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감정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당시 이성을 추구하던 계몽주의 시대에, 이성을 넘어서는 초월적 자각을 뜻하는 거죠. 물론 이런 어려운 말에 매몰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제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단어는 절대 의존이라는 표현입니다.

 

의존이라는 말은 나 외의 다른 존재에 기대고, 그로 인해 도움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가령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은 철저하게 인간에게 의존하여 살아갑니다.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인간도 동물에게 의존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애완동물에게 느끼는 정서적인 의존이나, 가축들에게 느끼는 식용 혹은 경제적 의존이지, 집안의 동물들이 인간을 향해 느끼는 것처럼 절대 생존의 의존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순 없죠.

 

그럼 인간이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는 무엇일까요?

 

어린 아이의 경우 부모님들이 그 절대의존의 대상입니다. 우리 인간은 갓난아기 때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린 아이 때도 마찬가지죠.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충분한 돌봄과 양육이 병행되어야 겨우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점점 더 의존하는 대상이 사라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 때가 되면, 부모님이나 인생의 선배들 도움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죠. 이 때부터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의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와 같이 의존할 대상들을 잃어버리고 나면, 인간은 또 다시 의존할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본래 누군가를 의존하는 동안은 외로움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의존할 대상이 없다면, 인간은 고독해지고 그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스스로 완전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슐라이어마허가 인간이 절대의존의 감정을 가졌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의존할 누군가가 끊임없이 필요한 존재인 겁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께 절대 의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이 순간에 우상을 찾습니다. 우상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욕망을 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죠. ( *우상이 왜 우리의 욕망과 관련이 있는지는 2주 전의 묵상 말씀을 참고하세요. http://canaankumc.org/xe/board_hnNM19/12115 )

 

여기서 다시 오늘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왜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라고 했을까요? 이것은 어린 아이들이 실제로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미숙함 때문에 부모와 어른들에게 의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예수님이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라고 하신 것은, 단지 겸손한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 뿐만이 아니라, 내 스스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물질에 의존하며 그 물질만을 추구하고 산다면, 어린 아이처럼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삶을 빗겨가게 됩니다. 아이들이 부모님께 의존하듯이, 여러분이 진정 의존할 존재는 여러분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젠 더 이상 의지할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온전히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천국은 여러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여러분이 가장 의지하고 믿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1) 2) 가족 3) 국가 4) 하나님

 

 

[기도]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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